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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산소자리와 후손의 흥망성쇠
살아있는 양주설화⑨
  2017-10-18 18:32:44 입력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곧 많은 사람들이 조상 묘를 찾아 벌초도 하고 성묘도 다녀올 텐데, 가만 보면 우리나라만큼 조상 묘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하는 곳이 또 있었을까 싶다. 산소에 대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참으로 많이 전해지는데, 특히 명당에 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자손들이 벌초할 수 없는 산소자리, 이장을 해서 부자가 된 집안과 쫄딱 망해버린 집안도 있다. 명당 때문에 가뭄을 극복할 기우제도 소용없고, 무서운 병을 고치려고 남의 산소를 파헤치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다. 2012년 2월부터 3월 사이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한국구비문학대계> 제작을 위한 지역 설화 채록과정에서 양주시 일대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은현면 도하1리 황골 주민 이윤자씨가 들려주는 산소자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백 년쯤 전에 어떤 사람이 부친 장사를 지내는데, 지관이 자리를 깊이 파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땅 위에 덮어서 모실 수 없다고 생각한 상주는 지관의 말을 어기고 땅을 깊이 팠다. 그랬더니 큰 돌이 나왔다. 그 돌을 들춰내자 연못처럼 물이 가득 있었는데, 고기가 펄쩍 뛰어 올랐다가 연못 속으로 사라지더니 물도 말랐다. 상주는 그 자리를 무덤으로 쓰고 장사를 지냈다. 그런데 매년 벌초를 하고나면 자식들이 죽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남이 대신 해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집안의 벌초는 아직도 남이 와서 해준다고 전한다.

인물 좋은 홍씨 집안에게서 산소자리를 산 뒤 후손이 잘된 김씨 집안의 이야기도 있다. 광적면 덕도리 주민 전원백씨가 전해준 이야기인데, 홍씨 집안에 인물이 뛰어난 미남 후손이 태어났다. 인물이 너무 좋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부마를 뽑는 시험에 가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홍복을 거쳐 송추를 지나 걸어서 서울까지 가서 시험장에 들어갔는데, 시험관이 홍씨 후손을 보고는 ‘분명히 조상의 묘가 명당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험관은 바로 안동 김씨 집안의 대감이었다. 대감은 사람을 시켜서 돌아가는 홍씨의 뒤를 밟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홍씨의 할아버지 묘가 명당이었다. 그러자 안동 김씨 대감은 홍씨 집안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는 매년 벼 한 섬씩 주기로 약속하고 산소자리를 사서 자기 조상의 무덤을 옮겼다. 이후 안동 김씨 집안은 아주 잘 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후손이 일본 법대를 졸업하고 나중에 이북 김일성 밑에서 법무장관까지 지냈다고 한다. 김씨 집안의 산소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이윤자씨가 전하는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산소를 옮겨서 좋은 일만 생긴 것은 아니다. 8남매를 둔 가난한 집의 가장이 어느 날 집을 나가 종적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후 집안의 살림이 갑자기 늘어나 큰 부자가 되어 동네 5리 안의 땅을 모두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웬 여자가 찾아와 부자로 살면서 아버지를 험한 곳에 두고 찾아보지도 않는다고 말해 부친의 시신을 찾아 나섰다. 마침내 아버지 무덤을 찾아 팠더니 온갖 빛깔의 도라지꽃이 가득 피었다가 해를 보고는 사라져 버렸다. 가족들은 부친의 뼈를 가지고 와서 좋은 묏자리에 모셨지만 이후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 버렸다.

전원백씨는 부자가 될 산소자리는 따로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외암리에 사는 친구의 할아버지는 무척 가난하게 살았다. 부친이 돌아가셔서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지관이 자리 두 개를 봐 주면서 한 자리는 여전히 가난하게 사는 자리이고, 다른 한 자리는 부자로 살기는 하되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게 될 자리라고 말했다. 친구의 할아버지는 가난이 지겨워 부자로 사는 자리에 부친의 시신을 모셨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정말로 잘 살게 되었지만 말을 못하는 장애를 가진 후손이 세 명이나 태어났다고 한다. 게다가 후손이 대대로 부자로 살아야 하는데, 지금 친구의 사는 형편은 부자라기에는 다소 애매한 느낌이 있다고 한다. 부자가 되는 명당이 있긴 하지만, 명당이 모든 면에서 좋은 일만 주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더군다나 명당의 힘이 자손대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가보다.

은현면 봉암리 주민 남선휘씨는 학질이 잘 떨어지는 조상 남구만 선생의 묘에 얽힌 이야기를 전했다. 오래 전에 남선휘씨는 의령에 모신 시조 할아버지 남구만 선생의 성묘를 갔다. 묘의 네 모퉁이에 담을 쌓고 분상은 잔디로 떼를 입혔는데, 그 외에는 콘크리트로 발라놓고 구멍만 세 개를 뚫어 놓았더라고 한다. 예전에는 학질을 앓게 되면 경을 읽어 귀신을 잡아 항아리에 넣은 후 메밀로 봉해 땅에 묻으면 학질이 떨어졌는데, 특히 남구만 선생의 무덤가에 묻으면 학질 귀신이 꼼짝을 못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선생의 무덤을 파헤치는 바람에 주변을 다 콘크리트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장흥면 일영2리 주민 손영길씨는 어떤 집안이 녹의산 명당자리에 무덤을 쓰는 바람에 기우제를 들여도 비가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비가 너무 내리지 않는데, 개울이나 샘을 팔 줄 몰랐던 시절이라 농사를 망치곤 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산에 몰려가서 그 무덤을 몰래 파내곤 했는데 그 때마다 비가 왔다고 한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각자의 몫이지만,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조상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좋은 곳에 잘 모셔서 손해 볼 일은 없는 듯하다.

2017-10-19 09:51:00 수정 이재희 기자(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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