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민족 오천만의 국가인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을까? 이에 대하여는 현재 논란이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948년 8월 15일로 여겨진다. 같은 해 5월 10일 총선거를 통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고 7월 17일 국헌을 제정함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여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명문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광복 3년만인 1948년 8월 15일 마침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그런데 역사에서 대한민국이란 이름은 1948년 이전에도 찾아볼 수 있으니 그것은 바로 1919년 4월 13일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이다.
통상 임시정부란 정식 정부 수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수립한 정부를 가리킨다. 국가는 국민과 국토 그리고 국권의 세 요소가 갖추어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점에서 임시정부는 이 요소의 전부 혹은 일부가 결여되어 온전한 정부와는 성격이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이러한 잠정적 정부를 가리키는 통상적 임시정부의 의미로 한정할 수 없는 것은 임정이 거족적(擧族的) 운동이었던 3·1운동의 독립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정부로서 필요한 조직을 상당 부분 갖추었으며, 국제적으로 대한민족의 독립의지를 대표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3일 중국의 상해에서 3·1운동의 항일정신을 결집하여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를 대외에 표방하기 위해 수립되었다. 사실 3·1운동을 전후하여 국내외에는 7개의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상호 갈등의 양상이 있었으나 독립운동을 통합적으로 지휘할 체계의 필요성을 느낀 민족지도자들은 난립한 임시정부의 단일화를 추진한 것이다. 이리하여 독립의 주체이자 그 대내외적 명의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란 소중한 이름이 비롯되었다.
비록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수립 이듬해부터 독립운동 노선을 두고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고, 일제의 탄압과 인접국들의 방관적 비협조로 상당한 시련의 시기를 거친 바 있다. 그럼에도 임정은 만주 등지의 독립전쟁을 지원하고 연통부와 교통국 등 정부조직을 운영하였으며 두 차례에 걸쳐 헌법을 개정하고 민족유일당 운동을 추진하는 등 민족의 독립운동을 진두지휘해 나갔다. 특히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민족의 독립 역량을 크게 신장하여 1940년에는 광복군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토대로 임정은 연합국과 연대하여 세계대전에 참여하는 등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등 온전한 정부에 준하는 위상을 갖추어 나갔고, 민족의 독립운동을 이끌어 결국에는 대한의 광복과 그 이후의 정부수립에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었다.
비록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토, 국민, 국권의 3요소를 모두 갖춘 완전한 정부는 아니었지만,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처음 사용하고,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민족의 독립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방하고, 민족의 독립운동을 통할하는 등 온전한 정부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사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국제법적 관점에서는 법적 요건인 ‘국제법에 입각한 주권 주장’, ‘망명정부 소재지 국가의 승인’, ‘실질적인 국가행위’의 세 요소를 모두 갖춘 합법적인 정부였다. 대한민국의 명의로 그 독립의지를 표방한 것 외에도, 중국정부의 승인을 얻었고 군사·외교·재정 등의 국가활동을 수행한 사실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정식 국가 또는 그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을, 1948년 8월 15일의 정부수립에 선행한 ‘제1의 대한의 건국’으로 간주함이 비약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