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나는 2살 때부터 외갓집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고 바로 여동생을 낳으셔서 나는 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외할머니 집으로 가게 되었다. 너무 어려서 부모님과 헤어졌기 때문에 난 그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나에 전부인양 의지하며 살았다.
일년에 한 번 아버지가 나를 보러 오셨다. 아버지라고 하는 의미는 나에게 있어서 그저 새 옷을 사오시고 먹을 것을 많이 사다 주시는 분이라고 느껴졌을 뿐 그리움이라든가 애뜻함은 없었다.
7살 되던 해 오년여만에 아빠는 나를 데리고 집으로 가셨다. 아버지가 오시던 그 산을 넘어 나를 데리고 가셨다. 지금의 동두천역은 내 생애 처음으로 본 가장 큰 차가 있던 곳이었던 것 같다. 외할머니 손만 잡고 다니다가 아버지의 손은 너무나 커서 그 손을 놓으면 그 큰차에 빠질 것만 같았다.
나의 집은 너무나 초라했다. 그 시대를 거슬러 보면 시골집은 모두 초라하고 허름하며 추웠다. 난 나의 집이 큰 성 같을 거라 생각했었다. 어린 마음에 나의 집은 너무 초라해서 실망을 하였던 것 같다.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셨다.
5년만에 어머니 품에 안겼지만 어색해서 어머니의 품을 밀며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틈에서 사랑 받고 어리광만 떨며 살았던 나에게는 좁고 허름한 방에서 동생을 안고 나를 안아야 하는 어머니도 집도 싫었다.
다음날, 난 외할머니에게 가고 싶다고 울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힘드셨던 어머니 아버지는 투정부리며 울어대는 나를 돌볼 형편이 아니셨다. 집에 간지 삼일만에 다시 기차를 타고 아버지와 외할머니댁으로 왔다. 아버지는 하룻밤도 못 주무시고 가셔야 했다.
가시던 밤에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히시며 말씀을 하기 시작하셨다.
“은미야! 저 산에 달 보이니?”
“저 산 밑 달이 떠 있는 곳이 너의 집이란다. 저 큰 달이 비추기 때문에 따뜻하고 저 큰 달이 비추기 때문에 너에 집에는 귀신들이 오질 못한단다. 그래서 든든하고 튼튼하단다. 항상 기억해야 한다, 저 달이 떠 있는 밑이 너의 집이라는걸, 하루에 한 번 꼭 저 달에게 기도해 주렴. 엄마와 아빠 동생과 같은 집에 살게 해달라고”
난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대답을 하였다.
그 말을 남기시고 달이 비치는 그 밑으로 산을 넘어 가셨다. 처음으로 아버지가 걸어가시던 그 산을 보며 울었다. 유난히 밝은 달은 아버지가 멀리서 돌아보시는 모습까지 보여 주었다. 그날 이후 난 매일같이 달을 보며 기도했다. 달을 보다보니 토끼같이 생긴 것이 보여서 외할머니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방아를 찧는 토끼라고 말씀해 주셨다.
어젯밤. 퇴근길에 달을 보게 되었다. 어릴 적 하루도 안 빼놓고 기도하며 지켜보던 달은 토끼의 모습으로 보여지진 않았다. 가족과 살게 되면서부터 달은 쳐다보질 않았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변하는게 있듯이 나에게도 달에 대한 의미가 바뀌었다. 어릴적 큰 밝은 둥근달은 희망이였듯이 지금의 달은 소망이다. 가족과 같이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달은 내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소망의 달이 되었다.
오늘밤, 아이들과 달을 보며 어릴적 나의 아버지가 내게 희망을 가르쳐 주셨던 것처럼 내 아이들에게 작은 소망을 가르쳐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