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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문예샘터 수필/전영숙
  2013-10-08 09:39:20 입력

▲ 전영숙
일주일을 넘기지 못한다는 주치의의 소견이 무색하게 오늘로서 7개월하고도 열흘째.

칠순의 노구는 최첨단 의료장비에 의존해 숨을 고르고 있다. 면회에 앞서 철저한 소독과 안전장치로 우리와는 이미 다른 세계에 있음을 실감한다. 줄줄이 엮인 링거와 호흡기, 심장박동기 사이로 이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체구가 크셨는데 많이 왜소해지셨다. 길게 자란 백발이 그동안의 공백을 말해준다.

평소 혈압과 당뇨가 있던 이모님은 작년 겨울 갑자기 합병증으로 쓰러져 여태 의식이 없으시다. 장례를 치를 요량으로 외국에 있는 자식들을 모두 불러들였으나 하루가 이틀이 되고 그러다가 몇 달이 흘렀다. 기다림에 지친 가족들은 교대로 출국과 귀국을 반복하고 있다.
 
머리맡에 놓인 성경책이 무기라도 되는 냥 이모부는 계속 기도와 찬송을 드리고 있다.

이렇게라도 목숨을 부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버리지 않겠다는 응답이라며 끝까지 이모님 곁을 지키신단다. ‘이제는 편히 보내드리자’는 주치의의 말이 무슨 뜻을 의미하는지 아시면서도 짐짓 귓등으로 흘리신다. 무엇이 그토록 저들을 붙잡는 것인지 의문과 회한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손아귀에 끈이라도 부여잡은 듯 주먹을 쥐고 계셨다.

병원에서 나와 친척들은 근처 식당에 둘러앉았다. 멀리서 와준 가족에 대한 이모부의 예우였지만 하필 횟집이라니. 매운탕과 생선구이를 시켜놓고 아무렇지 않게 장례준비며 외국에 있는 자식들 얘기를 한다. 불쑥 많이 컸겠다는 손녀 얘기가 나오자 비로소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하루에 몇 십 만원하는 병원비를 충당하려고 집을 팔았다는 얘기며, 아들 퇴직금을 앞당겨 받았다는 둥 이런저런 푸념내지는 보고서다. 간간히 눈물을 훔치면서도 식사 주문을 꼼꼼히 하신다.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지글거리는 철판에 청어구이가 나오자 친정엄마는 내 앞에 대뜸 한 마리 놓아주신다. 요즘 얼굴이 꺼칠하다는 말을 하며 생선가시를 발라주신다. 의식 없는 당신 여동생 문병을 왔는데 코앞에 있는 딸을 먼저 챙기신다. 음식을 먹으면서 매장과 화장의 의견이 엇갈렸고 상조보험과 연금까지 들먹인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친정엄마는 이모부의 앞 접시에 수북하게 음식을 퍼주신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이모님은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걸 아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꿎은 탕국 미나리만 젓가락으로 휘적거린다.

내게도 많은 물질적 피해를 주신 장본인이지만 막상 이렇게 병원에 누워계시니 측은하고 안타까움에 가슴이 아프다. 남의 욕 들어가며 평생을 축적해온 재산인데 몇 달 만에 다 없애고 눈물까지 보이시는 이모부도 가엾기만 하다. 이제 그만 여기서 끝을 내자는 친척들의 말에 수긍하다가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며 원점으로 돌아오는 결론. 그 사이 매운탕 국물은 졸아들어 여러 번 육수를 보충해야 했고 직계가족이 알아서 하라는 윗사람인 친정엄마의 최종 지시가 내려졌다. 냄비에 남겨진 생선 대가리에 눈길이 간다. 인간들의 대화가 그렇지 하는 한심한 표정이다.

첫 숨을 토하며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왔던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만, 신생아를 거꾸로 들고 있는 산부인과 포스터만 머리에서 맴돈다. 태어난 순간도 기억에 없는데 마지막 가는 순간을 애써 그리고 있는 지금의 나는 무엇인지 공연히 생각만 깊어진다.

숨을 쉰다는 의미가 살아있다는 것이라면 이모님의 생명도 아직 다하지 않았으니 지켜봐야 한다는 말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다 옴짝거리는 발짓에 기적을 보듯 환하게 웃는 가족들에게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꿈을 꾸듯 눈꺼풀이 바르르 떨고 있다. 지금 이모님은 어떤 생각들을 하실까. 지나 온 세월들을 반추하고 계실지, 앞으로의 가실 곳을 미리 다녀오신 건지, 이도 저도 아닌 중간 지점에서 왔다 갔다 하시는지.

가실 때 편하게 가는 것이 소원이라던 돌아가신 노할머니 생각이 난다.

정말 소원대로 주무시다 편하게 가셨다. 정작 당신 딸은 세상에 무슨 한이 많아서 이렇게 포기를 못하시는지 모르겠다. 매일 숨을 쉰다고 과연 살아있는 것인지. 숨이 붙어있는 한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의무라면 신은 참으로 잔인하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또한 사람의 목숨이다. 당장 죽고 싶다고 죽을 수도 없고 모년 모월 모시에 죽겠다며 수첩에 기록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바람이라면 저렇게 오랜 시간 끌지 않고 단박에 조용히 가고 싶다는 생각이다.

병원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주차권에 도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차비 운운하는 사람들의 웅성임 속에 나는 아직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들숨과 날숨을 반복한다. 제발 이모님이 편하게 떠나시길 염원한다. 오늘 밤에라도 슬며시 손아귀 힘을 늦추어 끈을 놓아주시길 진실로 원한다. 차마 못할 말이지만 이모님이 숨 쉴 때마다 남은 가족의 숨통이 옥죄어 든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이 세상 숨 쉬고 있는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한다.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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