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부르지도 않았는데 매년 꼬박꼬박 찾아오는 불청객, 태풍과 장마는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와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히고 농민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태풍 에위니아는 미크로네시아가 붙인 이름으로 ‘폭풍의 신’이라는 뜻이다. 양주시 장흥면 삼하리 삼일농원. 수확기를 앞둔 농원에 찾아온 ‘폭풍의 신’과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퍼부은 집중호우는 17년 동안 농원을 운영해 온 김창식(52)·김희숙(47) 부부의 희망을 난도질했다.
“총 700평 중 400평의 비닐하우스가 태풍으로 내려앉거나 집중호우로 물이 찼습니다.”
삼일농원은 주로 관엽식물인 마리안느를 재배하고 있다. 성미 고약하고 까탈스러운 마리안느를 봄부터 가을까지 온도와 빛, 물을 맞춰주며 열심히 키워 막 출하를 앞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되고 만 것이다.
“뿌리가 물에 잠기면 스트레스를 받고 닿은 부분이 썩어버려요. 균 전염도 잘 돼죠.”
마리안느는 식물 주제에 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과도한 습기에 약하다. 이 때문에 비닐하우스 안으로 밀려든 물은 치명타였다.
곳곳에 자식 같던 화초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다. 하우스 몇몇 동은 터만 남아 있다. 지원 나온 군부대 장병들이 무너진 하우스를 정리한 뒤다. 비닐조각 등 모여 있는 쓰레기들과 텅 빈 자리만이 여기에 하우스가 서 있었다는 증거다.
김창식 대표는 난감하다 못해 멍한 얼굴이었다.
“피해액이 6천만원 정도 되지만 정부의 보상액은 몇 백만원 정도입니다. 보상 측정에 따라 대출이라도 나오는데 대출 길도 막혔어요. 살길이 막막해요”
태풍 같은 천재지변을 미리 알고 모두 대비한다는 건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미리 알고 방지할 수도 있었던 ‘인재’는 농민의 속을 더욱 타게 만든다.
비닐하우스 뒤편은 한층 높은 논 지대다. 논둑은 구멍이 뚫린 채 물이 흐르고 있다. 흙벽은 불어난 폭우에 속수무책이었다.
“공사만 철저하게 했더라면…98년 폭우에도 무사했는데 말입니다.”
마리안느를 키우기 위해 하우스, 난방장치 등 시설 갖추는데 드는 돈은 만만한 액수가 아니다. 당장 시설을 꾸미기 위해 끌어 쓴 부채, 융자금을 갚아야 한다. 대출이라도 받고 싶지만 쥐꼬리만한 복구지원금으로는 막막한 상황이다.
“자살할 것 같은 심정입니다. 저 화초들도 살려고 태어났는데….”
정성들여 키워오던‘미래’가 물에 잠긴 삼일농원 김창식 대표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그대로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