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부터 30년대 격동의 중국 베이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린하이윈은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을 마음에 남겨두고 싶었다. 현실 속의 어린 시절은 보내고 마음 속의 어린 시절은 영원히 남아있도록 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늘 고단한 삶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어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입학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여덟 살의 잉쯔. 무엇이든 보이는 것은 다 궁금하고, 들리는 것은 신비하다. 낙타 목에 메어놓은 방울도 재미있지만, 낙타 등에 실어 온 석탄을 사고파는 아버지와 장사꾼의 모습은 더 재미있다. 그러나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역사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미쳐버린 여관 문지기 딸 슈전, 양부모에게 매일같이 학대를 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지만 언젠가는 집을 나갈 꿈을 꾸고 있던 친구 뉴얼, 동생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남의 물건을 훔치는 아저씨, 열여섯에 늙은 영감의 첩으로 팔려온 란 이냥, 자기 아기에게는 남의 젖을 얻어 먹이고 잉쯔네 집 유모가 된 쑹 마, 그리고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죽은 아버지.
이렇게 혼란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눈 앞에서 수없이 벌어졌지만 잉쯔는 그 시절의 기억들을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는 그 이상으로 간직해왔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이 살아간 삶에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선택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중요한 삶. 누구에게나, 어떤 삶에도 이유가 있고, 어떤 선택을 하던 의미가 없는 것은 없다. 가벼운 결정도, 사소한 직업도 없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고, 앞으로도 변함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가만히 보자면 참 어지럽다. 빚을 진 부모 때문에 버려지거나 죽는 아이들,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유흥가에서 일하는 청소년, 권력을 잡기 위해서 소시민들도 지키며 살아가는 법을 교묘하게 속이는 정치인들, 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협박과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 이 사람들 속에 희망은 있는가?
나중에, 머지않아 다가올 언젠가에 어른이 될 아이들은 이 시간을 남겨두고 싶어할까? 지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니올시다’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쑹마의 어린 시절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