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꼭 읽어봐야 할 아주 소중한 이야기를 쓰는 박기범은 이라크 전쟁에서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생각으로 위험 속에 직접 뛰어들 정도로 사회문제에 열린 의식을 가진 동화작가다. 이런 작가이기에 <문제아>와 같은 깜짝 놀랄만한 글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창수는 다만 다른 아이들에게 지기 싫어하는 아이일 뿐이다. 엄마가 없어서 병약한 할머니 약을 챙겨드려야 하고,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깡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뿐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말썽을 일으킨 적은 없다.
어느 날, 6학년 깡패들의 시비에 걸려 크게 싸움을 하게 된 창수는 오히려 그날부터 문제아로 찍혀버렸다. 같이 다니던 친구들은 창수와 눈이 마주치는 것도 피하고, 창수가 다가오면 멀찍이 물러서 버린다.
도배 일을 하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자 창수는 보호를 받지 못하고, 어른들로부터 더욱 외면당한다. 아버지의 병원비 때문에 할머니는 여기저기 돈을 빌리고, 창수는 스스로 먹는 것까지 해결해야 할 상황이 되자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그러나 겨우 열두 살 창수에게는 그것도 힘에 부친다. 하지만 지는 것을 싫어하는 창수는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50cc 오토바이를 이용해 더 많은 신문을 배달한다.
이제는 문제아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창수가 왜 문제아가 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문제아로 만들었다. 나쁜 짓을 일삼는 따위의 불량한 행동을 하지 않는 창수는 상관없다. 사람들이 모를 뿐이다. 창수를 문제아로 보는 사람한테 창수는 영원히 문제아로 남게 되고, 창수를 보통 아이처럼 대해주면 창수도 그냥 보통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끔 스스로 말썽을 일으켜서 문제아가 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감싸며 무조건적인 용서를 요구한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지만, 그렇게 애쓸수록 더욱 큰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모른 채.
성추문, 황제 테니스 등 참 부끄러운 사건이 많기도 한 요즘이다. 창수처럼 문제아이긴 하지만 똑같은 문제아는 아닐 터. 왜 문제아가 되었는지 스스로 알 수 있는 사람이라도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