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이나 병원을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엑스레이에 찍힌 명확한 골절 선처럼 공학적인 정밀함과 확실성에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분초를 다투는 생사의 현장, 특히 소아 응급환자들이 몰려드는 센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 정밀함의 환상은 산산조각납니다. 그곳은 완벽한 혼돈과 사투의 공간입니다. 만약 이 치열한 생명의 현장에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들이닥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근 발생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압수수색 사건은 법 집행의 당위성과 응급 의료 현장의 특수성이 어떻게 충돌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찰과 의료진이라는 두 주체가 처한 전혀 다른 배경과 쟁점을 균형 있게 바라봐야 합니다.
경찰은 법원이 발부한 적법한 영장에 의거 집행에 나섰습니다. 환자가 사망한 사건에서 전자진료기록(EMR) 등 핵심 증거가 훼손되거나 수정되기 전 원본 데이터를 신속하게 확보해야 할 법적 의무와 강박이 존재합니다. 이들에게 ‘시간’이란 증거가 오염될 수 있는 리스크의 시간이며, 1분 1초라도 빠른 개입이 필수적입니다.
반면 응급실 의료진에게 ‘시간’은 환자의 뇌세포가 죽어가는 속도를 의미합니다. 6개월 된 아기가 1시간 넘게 경련을 일으켜 기도 삽관을 준비하고 뇌압 낮추는 약을 투여하는 초응급 상황, 혹은 60분간 심폐소생술(CPR) 끝에 안타깝게 환아를 떠나보낸 직후의 참담한 현장에 과학수사대가 들이닥쳤습니다. 진찰실 PC와 주임 간호사의 시스템이 마비되고, 아직 시신조차 수습되지 않은 소생실에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상황은 의료진에게 지울 수 없는 모멸감과 잠재적 범죄자라는 낙인을 안겼습니다.
즉, 수사기관의 신속한 증거 확보 의무와 응급실의 생명 유지 의무라는 두 가치가 좁은 응급실 복도를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충돌한 것입니다. 이 갈등을 병원과 경찰 간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는 이것이 곧 대한민국 필수 의료 붕괴의 도미노 현상으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사법 리스크와 극심한 모멸감에 노출된 의료진이 결국 생존율이 낮은 위급 환자 치료를 회피하는 ‘방어 진료’를 선택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응급실을 찾는 아이와 보호자의 몫이 됩니다.
이 비극적인 악순환을 끊고 응급 필수 의료를 지켜내기 위해 현장 전용 수사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처럼 초를 다투는 특수 공간은 일반 범죄 현장과 동일한 잣대로 강제 수사를 진행해선 안 됩니다. 명백한 증거 인멸 우려가 없는 한 서버에 로그가 남는 EMR 등의 자료는 임의제출을 우선 요구하고, 불가피한 현장 조사는 의료진과 일정을 조율해 진료 파행을 막는 절차적 통제 장치가 법제화되어야 합니다. 또한 의료진의 ‘고의’나 명백한 ‘중대 과실’이 입증된 경우가 아니라면, 최선의 노력을 다한 의학적 한계 내의 불가피한 결과에 대해 무분별한 형사고소와 구속 수사로 이어지는 관행은 끊어져야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중증 환자 치료에 뛰어들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안전망이 필수적입니다. 유가족의 억울함을 규명할 권리를 지키는 동시에 다른 응급 환자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기관과 의료계가 정례적으로 소통하며 현장의 특수성을 상호 이해하는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 사회가 매일 생사의 사투를 벌이는 의료진에게 결과의 무결점을 요구하고,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 때마다 그들을 가장 먼저 수사 대상으로 삼는다면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요?
과거 10%의 희생 가능성에도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들던 의료진이 형사 소송의 두려움과 방어 진료 뒤로 숨어버린다면, 한밤중에 위태로운 아이를 안고 찾은 응급실에서 우리는 허무하게 문을 닫은 필수 의료의 현장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법의 집행과 생명의 존엄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룰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양주예쓰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