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프랑스 유명 TV의 저널리스트가 틱낫한 스님이 운영하고 있는 플럼빌리지(Plum Village)로 삶과 명상에 대해 취재하러 왔다. 플럼빌리지는 틱낫한 스님이 생전에 살았던 프랑스의 명상센터가 있는 곳이다.
사람들과 인터뷰하기 전 스님은 그를 걷기 명상에 초대했다. 걷기 명상은 마을 사람들과 매일 하는 마음을 비우는 명상 코스인 것이다. 그날은 수백명이 함께 걸었다. 그중에는 어린아이도 많아 틱낫한 스님은 아이들 손을 잡고 걸었다.
그는 아이들에게서 걷는 동안 새로 깨달음을 얻고 자신은 아이들에게 평온을 준다고 한다. 모두 즐겁고 평화로운 걷기 명상이었는데 그 저널리스트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며칠 후 기사를 보니 걷기 명상이란 “굉장히 지치게 하는 것”이란 뜻밖의 기사가 나왔던 것이다.
왜 저널리스트에게 걷기 명상이 부자연스럽고 지치게 하는지 틱낫한 스님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걷기 명상을 했던 그 날은 아름다웠다. 새들은 지저귀고 많은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숲과 나무의 향기는 지금 여기의 존재와 생명의 신비로움을 충만히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저널리스트는 이미 세상에서 달리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멈춰 있거나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 같다. 그의 내면의 강한 에너지가 그를 앞으로만 밀어내기 때문에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번 취재에 어떤 기사를 쓰고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차 있었을 것이다.
그는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자유롭지 못했다. 행복의 기본 조건은 자유이다. 저널리스트가 틱낫한과 충분히 걷기 명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마음을 비워 걷기 명상을 했다면 그도 그들과 함께 걷는 것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이 주장하는 걷기 명상이란 모든 걸음걸음이 북돋움이고 치유라는 것이다. 북돋움과 치유의 걷기는 전혀 어렵지 않다. 사무실 안이든 거리에서든 공원에서든 산에서든 상관없이 언제든 마음을 비워 걷기 명상을 할 수 있고 발걸음 하나하나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을 비워 걷는 것에 익숙해지면 바로 지금 여기에 온전히 존재할 수 있다.
걷기 명상에 익숙해지면 삶에 있어서 자신을 쓸모 있게 만들 수도 있고 삶이 나를 쓸모 있게 변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의 습관대로 자꾸만 뛰려고 한다. 지금까지 계속 달려왔는데 행복이 저만치 어디선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또 다시 뛰려 한다.
우리는 조상님들로부터 달리는 습관을 물려받았다. 스스로 삶 속에서 달리는 습관이 배어 나온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비워 고르게 숨 쉬면서 지금 여기에 머무르는 법을 깨닫고 현재의 순간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걸을 때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오로지 발걸음에만 마음을 쏟는다면 그것이 마음을 비운 걷기이며 걷기 명상이 되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이 행하였던 마음 비워 걷기 즉 걷기 명상을 소개한다.
먼저 천천히 걸을 때의 걷기 명상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면 점심시간에 천천히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선 자신의 사무실이나 그 주위, 집이라면 동네나 뒤뜰, 시장이나 공원 등 편한 곳을 택해 천천히 걷는다.
처음으로 걷기 명상을 시작했다면 천천히 걷는 것이 좋다. 땅에 닿는 발에 온 신경을 집중하면서 숨을 들이마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도착했다.” 이것은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상이고 화두이다. “어디에 도착하라는 말인가?”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 것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 도착하라는 것이다.
삶이란 지금 여기에서만 쓸모가 있는 것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여기 오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진정으로 한 순간 뿐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만 삶과 약속을 맺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을 놓치게 되면 삶과의 약속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마음을 비워 걷기 명상을 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살 수 있는 방법을 익히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뜻한다. 만약 과거에 휩쓸리고 미래에 정신을 쏟고 있다면 진정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 깊이 닿음으로써 진정한 삶에 이를 수 있고 진정으로 살아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 다시 걸음을 내딛고 숨을 내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집이다.” 내 진짜 집은 과거에 있지 않고 또 미래에 있지도 않다. 나의 진정한 집은 삶 그 자체이며 삶은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나는 나의 집에 진짜로 도착했고 그래서 평안함을 느낀다.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도착한 나의 집은 평안의 집이요, 감사와 사랑의 집인 것이다. 또 다른 누구에겐 기쁨과 치유의 집이요, 위로와 희망의 집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도착했음을 느낀다면 미소를 지어라. 자신에게 축하의 미소를 지어주는 의미이다.
도착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도착하게 되면 더 이상 달릴 필요가 없으며 달리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잠을 자면서까지 끊임없이 달린다. 꿈에서 꿈꾸는 악몽에서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달린다.
그래서 멈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멈추면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으며 삶의 놀라움에 닿게 되어 변화할 수 있고 치유될 수 있다. 숨을 들이 마쉬며 "나는 도착했다" 숨을 내쉬며 "나는 집이다"
두번째로 빨리 걸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세 걸음을 내딛으며 “나는 도착했다. 나는 도착했다. 나는 도착했다”, 또다시 숨을 길게 내쉬면서 세 걸음 내딛고 “나는 집이다. 나는 집이다. 나는 집이다”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마음 비우기의 에너지가 내 안에 깃들어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다.
나의 경험을 통해 틱낫한 스님의 걷기 명상을 10여년 해본 결과는 주어지는 소리, 향기, 사물에 몰입하여 지금 여기의 삶을 느끼고 많은 근심, 걱정, 고통을 치유하는 힘이 생기고 그래서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매일 양재천을 걸으며 또는 사무실 옥상에 마련한 라비린스(Labyrinth)를 걸으며 또는 주변 시장 속을 걸으며 걷기 명상으로 나 자신을 치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