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경기도 양주에 둥지를 틀고 환자들을 진료한 지 벌써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강산이 두 번도 더 바뀐 시간 동안 수많은 환자를 만났고 수없이 많은 수술을 집도했지만, 최근 응급실로부터 호출은 필자의 가슴을 세차게 뛰게 만들었습니다. 90세 할머니께서 아킬레스건 파열로 응급실을 통해 방문하셨다는 보고였습니다. 급히 내려간 그곳에는 아스라한 시간의 저편에서 걸어 나온 듯한 반가운 얼굴이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필자의 첫 인연은 28년 전 남해의 푸른 바다 한가운데서 시작되었습니다. 1998년 정형외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필자는 군의관 대신 남해 섬의 공중보건의사로 발령받았습니다. 과체중에 이미 두 아이를 둔 가장이라는 조건 때문이었지만, 꼬박 36개월을 섬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내려가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웠었습니다.
당시의 남해는 지금처럼 교통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종합병원에 가려면 남해대교를 건너 진주시까지 꼬박 2시간 이상을 달려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외딴 섬에서 정형외과 의사의 손길은 늘 부족했고, 환자들은 언제나 차고 넘쳤습니다. 섬마을 특성상 거칠고 험한 일로 심하게 다치는 분들이 많아 주말도 밤낮도 없었습니다. 밀려드는 응급 환자들 때문에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 수술방에서 밤을 지새우고 일요일 오전에야 겨우 빠져나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몸은 고되고 지쳤지만 그 시절을 버티게 한 것은 섬사람들이 건네준 투박하고도 깊은 정이었습니다. 척박한 삶을 살아내느라 겉모습은 거칠어 보여도 마음을 한번 열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이들이었습니다. 수술을 받고 퇴원한 환자가 피를 뺀 50㎝짜리 감성돔을 아이스박스에 꾹꾹 담아 가져오기도 하고, 직접 담근 유자청이나 알싸한 육쪽마늘을 진료실에 툭 던져두고 가기도 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잊지 못할 한 할머니가 계십니다. 진료실에서 제 손에 몰래 담배 한 갑을 꼭 쥐어 주시며 말없이 웃으시던 분이었습니다. 의사에게 담배 선물이라니 참 의아해 하시겠지만, 아마도 병원 뒷마당에서 필자가 몰래 담배 한 대를 태우며 고단함을 달래던 모습을 보셨던 모양입니다. ‘나만 아는 비밀’을 공유한 공범의 눈빛으로 지으시던 그 따뜻한 미소는 청년 의사였던 필자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위로였습니다.
남해는 농사와 바다 일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독특하고도 고단한 지역이었습니다. 특히나 여인들의 삶은 무척이나 고됐습니다. 옛 유배지의 풍토가 남아있던 탓인지 남존여비 사상이 짙어 병원 간호사가 점심시간에 탈곡기에서 쌀을 내려 남편 밥상을 차려주고 다시 근무하러 뛰어올 정도였습니다. 밭일부터 배 타는 일까지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하던 남해 여인들의 관절이 온전할 리 없었습니다.
이번에 응급실로 찾아오신 할머니 역시 남해에서 60대 초반의 나이에 양쪽 무릎의 극심한 통증으로 필자를 처음 찾으셨던 분입니다. 섬마을 공보의 시절 정성으로 돌봐드린 그 인연을 잊지 않으시고 필자가 양주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할머니는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찾아오셨습니다. 2005년에는 왼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2016년에는 오른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필자에게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남해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다 어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으셨고, 현지 병원에서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소견을 듣자마자 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70세 아들의 손을 잡고 이곳 양주까지 올라오셨습니다. 차로 족히 6시간이 걸리는 그 먼 거리를, 아픈 다리를 이끌고 오직 필자 이름 하나만을 믿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90세가 되신 할머니의 깊어진 주름과 마주하며 필자는 의사로서 깊은 연민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환자를 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의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환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신뢰’와 ‘진심’입니다. 청년 시절 남해에서 환자들과 나누었던 날것 그대로의 교감, 밤새워 수술을 마친 후 함께 나누었던 안도의 미소들이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할머니를 이곳까지 이끈 힘이었을 것입니다. 환자가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자신의 몸을 맡길 때 의사는 비로소 가장 숭고한 책임감을 마주하게 됩니다.
6시간의 먼 길을 달려와 필자의 손을 잡으신 할머니께 필자가 드릴 수 있는 보답은 단 하나, 그 옛날 남해에서 그랬듯 진심을 다해 치료하고 온전한 일상을 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의사로 살아온 35년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짧을지도 모르는 이 시점에 만난 청춘의 인연은 필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그때처럼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가.”
오늘도 필자는 수술실로 향하며 다짐합니다. 내 앞에 선 환자의 고통을 깊이 연민하고, 한번 맺은 인연을 끝까지 책임지는 의사. 그 본연의 자세를 결코 잃지 않겠습니다.
양주예쓰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