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붕괴의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경고음이 도처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최근 발생한 수가 협상 결렬은 단순한 이익 집단 간의 밥그릇 싸움이 아닌, 현행 건강보험 시스템이 지닌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현재의 수가 협상 구조는 대등한 계약 관계가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정해둔 재정 가이드라인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입니다. 물가와 인건비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경영 현실을 외면한 채 제시되는 터무니 없는 1.6% 인상률은 사실상 진료비 삭감 통보와 다름 없으며,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보건복지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로 넘어가 정부와 가입자 중심의 일방적인 결정이 강제 시행됩니다.
이처럼 공급자 단체의 의견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불공평한 구조 속에서 의사들은 법률이 규정한 요양기관 강제 지정제에 묶여 협상권조차 박탈당한 채 패널티를 감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건정심의 제도적 횡포와 일방통보식 정책 강행에 맞서 의료계 내부에서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생존 수단으로 ‘의사노조’라는 카드를 심각하게 만지작거리고 있습니다.
물론 의사를 고소득 전문직으로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 속에서 의사들의 노동자 권리 주장이나 파업권 요구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부정적 국민 정서에 부딪힐 수 있습니다. 특히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에서의 집단행동은 큰 우려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정부의 일방적인 통제로 동네 의원들이 문을 닫고 1차 의료 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져 환자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 시작한다면, 의료 시스템 정상화를 위한 이들의 저항에 공감하는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실제 의사노조 형성은 법적 현실이라는 높은 벽을 넘어야 합니다. 현행법상 개원의는 사업자로 분류되어 노조 설립이 불가능하고 집단행동 시 담합으로 처벌받기 때문입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의료계는 우선 근로자성이 인정되는 전공의, 대학교수, 봉직의를 중심으로 전국 단위의 의사노조협의회를 공고히 한 뒤 의협 등 직능단체와 정책연대를 맺는 영국의사협회 방식으로 대정부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우회 전략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부의 강력한 수가 독점과 진료 행위 통제 속에서 개원의 역시 사실상 정부에 종속된 ‘준 종속적 근로자’임을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교섭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나 특례법 제정을 추진하는 정공법까지 고려하고 있습니다.
결국 지역·필수·공공의료를 살리고 대한민국 의료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극단적 대치 상황을 막을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과 대처가 시급합니다. 감정적 대립이나 일회성 대응을 넘어 진료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를 탈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원가 보존율 100%’를 보장하는 원가 기반 수가 산정 체계를 법제화해야 하며, 임금과 물가 상승률이 자동으로 반영되는 원가 지수 연동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또한 독일이나 일본처럼 협상 결렬 시 정부가 독점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제3의 공적 중재기구가 합리적 조정을 내리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하며, 건정심과 재정운영위원회의 인적 구성을 전면 쇄신해 의료 공급자의 목소리가 균형 있게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의료계 역시 수가 협상 시즌에만 반짝 대응하는 체질에서 벗어나 상설 수가 연구체계를 확립하고 정밀한 의료 원가 데이터를 축적해 정부와 국민을 설득하는 데이터 중심의 논리를 정립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정부가 의사들의 합리적인 권리를 지나치게 억누른다면 요양기관 강제 지정제의 위헌성에 대한 헌법소원 등 강력한 법적 대응도 병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 수가는 단순한 비용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의료의 질과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사회적 계약’입니다. 공급자를 통제와 억압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태도 변화만이 환자의 생명을 지키고 1차 의료 인프라의 붕괴를 막는 유일한 길일 것입니다.
양주예쓰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