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리라. 남자 20세에 나라를 평안히 못 하면 후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조선 팔도를 호령했던 20대 청년 장군 남이가 남긴 시(詩)다. 20대 청년의 호탕한 기운과 호국혼이 한 글자, 한 글자마다 가슴에 맺힌다. 군인이라면 이 정도 패기, 아니 호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남이는 백두산 돌에 칼을 갈아보지도 못하고 정쟁에 휩싸여 26세 나이에 죽었다. 역시 나쁜 정치는 인재를 싫어한다.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 토벌에서 뛰어난 무공으로 승전을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강직했고, 세조가 총애했던 남이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못난이 예종은 남이가 싫었다. 간신들은 귀신같이 냄새를 맡았다. 유자광이다.
남이가 공주와 간음했다는 소문을 날조해 정치적 곤경에 빠뜨렸다. 죽을 팔자이다 보니 남이가 숙직을 서면서 혜성이 나타난 것을 보고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이 들어설 징조”라고 한 말이 독이 됐다.
유자광은 이를 역모로, 아니 내란으로 엮었다. 모든 이가 외면했다. 심지어 계유정난 공신인 장인 권람의 절친들도 외면했다. 결국 1468년 10월27일 남이는 군기감 앞 저자거리에서 강순 등과 함께 효수당했다.
여야는 이번 6.3지방선거에 청년과 여성을 우대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공천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나쁜 정치가 남이를 죽였듯이, 합법 꼼수와 조롱으로 청년 정치의 씨를 말려 죽여서는 안 된다.조선이 망한 이유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