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공장과 물류창고, 건설현장을 누비는 노동안전지킴이로서 중소규모 사업장에서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우리는 30년 동안 사고 한번 없었습니다”, “아침마다 교육도 하고 장갑, 안전화도 다 사줬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요?” 등의 항변이다.
2024년 1월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전면 적용되면서 중소규모 경영자들의 불안감은 꽤 커져 있다. 하지만 현장 점검을 나가보면 여전히 ‘서류 비치’와 ‘운’에 기댄 안전관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이 요구하는 핵심은 단순히 사고가 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체계(System)’를 갖추고 이를 ‘실행’했는가? 이다. 중소규모 사업장 경영자가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할 5가지 핵심 과제를 제언한다.
1. 전담 조력자를 세워라: ‘안전보건관리담당자’ 지정
중소기업 경영자가 법률 용어와 복잡한 행정 절차를 충분히 숙지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설령 법적 선임 의무가 없는 20인 미만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일반 업무와 겸직 가능한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지정하기를 권한다.
이때 담당자는 가급적 서류 작업에 능숙하고 안전의식이 높은 젊은 인재가 적합하다. 경영자는 이 담당자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단순히 이름만 올려두는 것이 아니라, 법적 의무사항을 체크하고 현장의 위험요소를 보고받는 공식적인 채널로 활용해야 한다. 경영자의 ‘귀’와 ‘입’이 될 실무자가 있어야 체계구축의 첫 삽을 뜰 수 있다.
2. 선언이 아닌 실천의 지표: ‘경영방침과 목표’ 수립
안전보건 경영방침은 사무실 벽에 걸어두는 액자가 아니다. 경영자의 확고한 신념이 담겨야 한다. 단순히 ‘안전제일’이라는 구호보다는 ‘올해 아차 사고 보고 건수 20건 이상’, ‘위험요인 개선조치율 100%’와 같이 수치화되고 계량화된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이 목표는 모든 종업원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우리 사장님이 안전만큼은 돈보다 우선시하는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안전 문화의 시작이다.
3. 안전관리의 심장: ‘위험성평가’의 내실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위험성평가’이다. 많은 사업장이 아직 실행하지 않고 있거나 실행을 하더라도 타 업체가 작성한 서류나 외부 컨설팅업체가 써준 서류를 그대로 베끼거나, 현장의 개선 활동은 이행되지 않고 단지 서류만 갖추어두곤 한다. 이는 사고 발생 시 아무런 법적 보호막이 되지 못한다.
경영자는 위험성평가 절차를 마련하고, 반기 1회 이상 직접 점검해야 한다. 현장 근로자들이 “저 기계의 센서가 작동 안 해요”, “이 공장은 너무 어두워요”라고 말하는 생생한 위험요인들을 수집하고 개선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법이 요구하는 ‘확보 의무’의 핵심이다.
4. 의지의 척도: 예산편성 및 자율권 부여
안전은 공짜로 얻어지지 않는다. 노후시설 교체, 보호구 구입, 안전교육비 등 구체적인 안전보건 예산을 편성하고 실제로 집행해야 한다. 특히 앞서 지정한 안전보건관리담당자에게 예산집행에 관한 일정 부분의 권한을 부여할 것을 권한다. 현장의 사소한 위험요소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작은 예산'이 경영자의 결재를 기다리다 사고로 이어지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예산집행 실적은 경영자가 안전에 쏟은 노력의 가장 객관적인 증거가 된다.
5. 보고와 피드백의 일상화 : 소통의 시스템화
경영자가 모든 현장의 나사 하나까지 점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보고 체계’가 중요하다. 안전보건관리담당자가 정기적으로 현장의 위험요소를 정리해 보고하고, 경영자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개선 지시를 내리며, 다시 그 결과를 확인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행정력이 부족한 중소사업장일수록 이 소통 구조를 단순화해야 한다. 거창한 보고서가 아니더라도 주간회의나 단톡방 등을 활용해 안전 이슈를 상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중대재해 예방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돈이 들어서’, ‘사람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미뤄두었던 안전조치들은 사고 순간 경영권을 잃거나 형사처벌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제는 ‘운 좋게 사고 없던 30년’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위험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자율 안전체계’를 자랑해야 한다.
안전보건관리담당자를 임명하고,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적재적소에 예산을 쓰는 지극히 상식적인 노력이 중대재해를 막는 길이다. 안전한 일터는 노동자의 생명뿐만 아니라 경영자의 미래 또한 지켜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