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여권, 임시보호, 임시도로…. 무언가가 꼭 필요하지만, 정식 체제를 갖추기에는 상황이 긴박하여 선제적으로 마련해두는 무언가에는 주로 ‘임시’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19년 4월 11일 그날도 그랬다. 우리 민족에게 너무나 필요하고 간절했지만 아직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그 때에, 언젠가는 우리 땅에 되찾아올 빛을 기약하며 세워졌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
임시정부 수립 약 한 달 전, 조선은 독립국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세계만방에 공표하는 3·1운동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국내외에 분산되어있는 독립운동의 동력을 하나로 모으고 우리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정부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대한’의 정신을 이은 민주공화제의 독립국가라는 역사적인 의미를 품고 있었다. ‘대한으로 망했으니 대한으로 흥하자’라는 결의로 시작하였으나 임시정부의 여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일제의 감시와 탄압은 물론이고, 독립운동 노선에 대한 의견 차이부터 재정적 타격, 외교적 고립까지 겹치며 고난을 거듭한 임시정부는 수차례 거점을 옮겨 다니며 풍찬노숙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역사를 지탱하였던 무수한 영웅들이 그러하였듯, 최초의 자주적 민주국가 건설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원동력으로 광복의 날까지 27년간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헌법 전문에도 나와 있듯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적 근간이 되었다.
‘10년의 노예 생활을 벗어나 오늘에 다시 독립 대한의 국민이 되었도다. … 우리 국민은 다시 이민족의 노예가 아니요 또한 다시 부패한 전제 정부의 노예도 아니요 독립한 민주국의 자유민이라. … 오직 신성한 국토가 아직 적의 점령하에 있나니 이천만 자유민아 일어나 자유의 전쟁을 벌일지어다.’
위는 국가등록문화유산인 <대한민국 임시정부 성립 축하문>의 일부이다. 축하문이 쓰이던 시점은 경술국치로부터 약 10년이 지난 때였으니 ‘10년의 노예 생활’이라 쓰여 있지만, 후대에 보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그 뒤로부터 25년이나 더 암울한 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또 그만큼, 이 굴욕의 시간을 종결하는 시작점을 오늘로써 선언한다는 비장한 의지와 그들이 그렸던 우리나라의 이상향이 분명히 드러나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렬한 울림을 느끼게 한다.
올해 4월 11일에도 국가보훈부 주관하에 ‘제107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이 거행된다. 또한 전국의 각 보훈관서에서는 생존 애국지사 및 민족대표와 임시정부 요인 유족들에 대한 위문이 이루어졌다. 대한민국의 뿌리를 지킨 선열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미를 담아, 부처의 지향점이자 핵심 가치인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보훈부는 꾸준히 나아가는 중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4월은 벚꽃잎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날이지만, 107년 전의 누군가에게는 일생일대의 결단으로 밤을 지새웠던 추운 계절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하루하루를 너무나 당연하게 느끼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날들에 대해 잠시라도 되돌아볼 수 있는 4월의 어느 날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