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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0년, 건설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저는 첫 발령지로 한강에 설치되는 교량 공사 현장에 배치됐습니다. 공사팀 소속으로 근무하며 매일 현장의 작업 일보를 작성하고, 현장소장의 결재를 받던 중 공무팀으로 보직이 변경되는 인사조치를 받았습니다.
당시 공무팀은 실행예산 수립, 설계변경 검토, 대내외 공문서 작성 등 건설 현장의 행정 및 관리 업무를 하는 부서로, 지금처럼 디지털화된 시스템은 전무했던 터라 모든 문서 작업이 손으로 직접 이루어지던 시대였습니다.
공무팀 전환 직후 현장소장으로부터 호출받았습니다. 내용을 듣고 보니, 제가 글씨를 가장 또박또박 잘 쓴다는 이유로 석사학위 논문의 원고를 원고지에 손으로 옮겨 써야 한다는 요청이었습니다. 소장은 당시 대학원에 재학 중이었고, 논문 주제는 ‘건설 현장의 안전 관리비 계상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건설 현장에서의 ‘안전’이란 개념은 오늘날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안전모 착용, 플래카드 부착 정도만으로도 안전관리가 충분하다고 인식되던 시절이었기에, 공사비 산정 항목에 안전 관리비를 계상한다는 개념은 매우 생소했고, 실제 현장에서는 비현실적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함에도 저는 약 2년에 걸쳐 틈틈이 논문 원고를 정서하였고, 해당 논문은 마침내 학위 논문으로 정식 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 덕분인지, 또래 동기들보다 빠르게 진급의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는 그런 우연과 기회가 현실이 되던 시대였습니다.
몇 년 후 산업안전공단이 설립되었고, 당시 소장은 고위 간부로 영입됐습니다. 이후 연락을 통해 “2주간 안전교육만 이수하면 자격증인지 수료증인지 받을 수 있다”며 교육 참여를 권유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안전관리자로 지정되었을 때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면 모든 법적 책임이 본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참여를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지금처럼 관련 정보를 쉽게 접하거나 정부 차원의 제도 안내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판단에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제가 현장소장으로 부임하게 된 공사는 규모가 상당히 큰 프로젝트였고, 법적으로 안전관리자의 상주 배치가 의무화된 현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안전관리자는 현장을 순회하며 사사건건 ‘위험 요소’를 지적했고, 자주 작업 중지를 요청했습니다. 이는 공정관리 측면에서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현장소장인 제게도 심리적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이에 저는 일정 조정을 요청하며 ‘적정한 수준의 조율’을 시도했지만, 안전관리자는 ‘사고 발생 시 모든 책임이 본인에게 귀속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현장을 떠나게 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굴착기를 이용해 H-PILE을 양중하던 중 불의의 낙하 사고가 발생했고, 한 명의 작업자가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게 됐습니다. 이후 관계 당국의 전면적인 사고 조사가 진행됐고, 그 결과 저는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통보받았습니다. 더욱이 사고에 따른 벌금조차 ‘개인 책임’이라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고, 결국 전액을 제 자비로 부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뼈아픈 경험 이후 다른 회사에 재입사하여 다시 현장소장직을 맡게 됐을 때는 모든 작업을 철저히 안전관리자 입회 하에 진행했고, 안전 시설물도 초기 단계에서 함께 시공하여 안전 확보를 우선으로 하는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놀랍게도 이러한 방식은 초기에는 다소 번거롭고 시간이 소요되는 듯 보였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존 공정에 약간의 시간만 추가됐을 뿐이고, 별도의 큰 비용도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작업자들이 심리적으로 안심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장의 생산성이 향상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지금도 ‘안전’은 단지 사고를 예방하는 수단 그 이상이며, 당장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철저한 안전 수칙 준수는 인적·물적 손실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는 건설 산업 전반의 재해율 감소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바탕으로 오늘도 저는 안전화 끈을 단단히 졸라매고 현장으로 향하곤 합니다.
노동안전지킴이로 활동하며 무분별하게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작업자들을 교육할 기회는 많았으며, 지금도 안전 지적과 계도를 진행하며 교육을 하곤 합니다. 그럼 항상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안전하게 일하라가 아닌 안전할 때 일하라. 이것을 늘 가슴속에 새긴 후 일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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