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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떠퀴가 사나운 날
  2008-05-09 12:11:54 입력

미국산 수입쇠고기를 놓고 광우병이 있네 없네 온통 백성들이 돨돨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옆에 둥굴번번하게 생긴 남자가 신문을 뒤적이다 말고 중얼거렸다.

“젠장, 한우고기가 너무 비싸 쇠고기 한번 제대로 사먹어 보지 못하는 판에 수입쇠고기라도 싸게 먹나 싶었더니 개지랄들 떨고들 자빠졌어 진짜...”

그건 그렇고 애당초 에덴동산에서부터 말썽부리기 시작한 게 여자였고 그 여자란 요물 때문에 이날 이때까지 남자들 죄 죽어라 등골 빠지게 된거다. 이런 소리 여자들 들으면 그게 어째서 꼭 여자 때문이냐고 자기들끼리 재갈이며 접시를 두들겨 깰지 모르지만, 오늘 김가다는 어지간히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 있는 중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자 때문에 개피 본 일이 어디 한두번 이래야 말이지.

어렸을 때 배가 너무 고파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녔을 적에 옆집에 사는 부잣집 딸이 도시락을 두개씩 싸와서 김가다를 먹여 살렸다는 얘기를 그저 한두번 했으면 그만이지, 그걸 뭐 그리 대단한 자랑거리라고 이날 이 때까지 마누라 귓바퀴에 대고 나발을 불어대다가 기어이 며칠전 마누라한테 후라이팬으로 허벌나게 줘 터지고 말았다.

고등학교 시절 어느날 종례시간에 여학생 밀크박스를 와락 움켜잡았다가, 책가방으로 머리털이 죄 빠지도록 얻어터졌던 기억도 사실상 여자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왜 하필이면 다른 여학생은 안 그랬는데 그 여학생만 젖퉁이가 바가지를 엎어놓은듯 요란했는가 말이다. 김가다가 오죽 궁금했으면 그걸 움켜 잡아봤겠느냐 이 말이다.

고 2때 김가다네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예쁘장한 여학생과 눈이 맞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여학생 뒤에는 남학생들이 줄줄이 사탕이었다. 언젠가 그 여학생 앞에서 영웅이 되어 보고 싶어 10:1로 싸움을 벌였다가 눈퉁이가 붕어빵이 되도록 줘 터졌던 일도 그게 다 여자탓이었다.

대학교 때 언젠가도 그랬었다. 구내 식당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같은 과 여학생 국 심부름 해주다가 식당바닥에 미끄러져 옆통수가 깨졌던 일도 여자 탓이었다. 군대 있을 때도 그랬었다. 대대장 식모방에 몰래 심야침투에 들어갔다가 영창 갈뻔했던 일도 있었는데 대대장도 어지간히 덜 떨어졌지 거 수놈들이 바글바글하는데다 암놈 딱 하나를 점박아 놨으니, 그 수놈들이 밤잠을 제대로 잤겠는가 이 얘기다.

또 언젠가도 그랬다. 김가다가 장가 가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어느날 밤, 잘 아는 여자친구가 김가다가 혼자 사는 방에 와서 하룻밤만 재워달래서 재워 준적이 있었다.

이튿날 새벽에 김가다가 문을 열고 사주경계를 잘한 뒤에 여자가 김가다 방을 도둑괭이처럼 나섰는데, 그걸 하필이면 동네에서 내로라 하는 떠벌이한테 걸려가지고는 온 동네방네 소문이 자자하게 깔려서 30년이 지난 지금도 양주땅에 사는 토박이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김가다가 장돌뱅이차 전철을 탔는데 청량리에서 김가다 앞에 앉았던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워줬다 김가다가 냉큼 그 자리에 엉덩이를 내어 던졌다. 성북역에서 김가다의 건너편에 자리가 한개 났는데 바로 그 자리에 예쁘게 생긴 아가씨가 앉았다. 조금 뒤 무심코 아가씨를 힐끗 건너다 본 김가다는 갑자기 가슴이 활랑활랑 뒤집어질 것만 같은 충격으로 온 몸이 몸살이 날 지경이 되어버렸다.

아가씨가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척 꼬아 얹어 놓았는데, 그 짧디짧은 치맛속으로 속살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 김가다는 눈을 딱 감아버렸다. 그러나 감아서 될일이 아니었다. 당장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별 수없이 또 김가다가 눈을 떴다. 이번엔 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 여자가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바꾸어 얹어놓고 있었는데 이건 아까 것보다 내용물이 더욱 심했다. 우두망찰 정신이 혼미해진 김가다는 완전히 곤죽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아가씨가 김가다의 얼굴을 야릇한 시선으로 뜨께질하듯 건너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 감당못할 시선이었다.

“젠장헐, 빤스를 입은거야 안입은거야. 진짜루...”
김가다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 시선을 옆으로 따돌렸다. 그래도 궁금하기가 점점 더했다. 다시 그 아가씨를 건네다 보았다.
“원 보여두 웬만큼 보여야지, 뭐야 진짜루 아흐...”

김가다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이번에는 진짜로 다시는 그 아가씨를 쳐다보지 않겠다고 독하게 마음 먹었다. 그리고 신문을 펼쳐 들었다. 글씨가 제대로 눈 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래도 쳐다보지 않는 구실로는 신문이 최고였다. 신문을 보다말고 잠에 떨어졌던 남자가 잠이 깨자 또 보던 신문을 펼쳐들고 씨브렁거렸다.

“두꺼비 짝짓기 하는 소리덜 허구 자빠졌네. 아 위암, 코암, 간암, 췌장암, 눈깔암, 대장암, 피부암, 후두암, 그런 것들 걸려서 죽는게 겁나지, 잠자다 아파트 천장 내려앉을까봐 겁나구, 어떤 미친 새끼가 중앙선 디리 뛰어들어 내차 들이박아 죽을까봐 겁나구, 비오는 날 우산 쓰고 가다가 벼락 맞아 죽을까봐 겁나구, 바닷가 낚시질 하다가 졸지에 파도가 덮쳐 죽을까봐 겁나구, 산불나서 불에 타 죽을까봐 겁나구, 김정일이가 핵폭탄 터뜨릴까봐 겁나구, 뭐 그딴 것들이 겁나지 확률이 0.1%도 안되는 광우병 걸릴까봐 개지랄 들여? 다 새빨간 공산당놈들이 허는 정치공세여 쓰벌놈덜. 즈덜이 언제부터 그렇게 포시랍게 살았냐 쓰벌!”

“...”
이윽고 전철이 종로5가에 도착했다. 김가다는 장돌뱅이 가방을 챙겨 들고 전철을 나섰다. 그런데 주책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모양인가. 내렸으면 그저 앞만보고 갈 것이지 글쎄 뒤는 뭘하러 두리번 거리면서 한눈을 팔아.

“딱!”
“아이쿠!”

김가다의 이마빼기가 쇠기둥에 불을 번쩍 튀겼다. 만져보니 손가락에 찐득찐득 피가 묻어났다. 조금 후에 콧구멍에서도 뭐가 쪼르르 흘러내렸다. 피였다.

김가다는 한쪽 콧구멍은 휴지로 틀어막고 이마에 핀 벚꽃을 휴지로 눌러놓은 채, 역 구내를 인파에 떠밀려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면서 언뜻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까 김가다가 앉은 자리에 목사님이 앉았더라면 어땠을까. 어떤 목사님은 목적지까지 눈을 딱 감고 한번도 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또 어떤 목사님은 천정에다 시선을 딱 꽂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목사님은 냅다 자리를 떠나서 다른 칸으로 내 뺐을지도 모른다.

집사와 목사의 눈높이 차이는 최소한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문을 보던 남자가 또 김가다 옆에 따라 붙으며 꿍얼꿍얼대고 있었다.

“쓰벌, 그럼 미국 놈덜은 죄다 광우병 걸릴 것 아녀? 미국에 사는 교포들은 광우병 걱정 않고 쇠고기 잘만 먹구 살더라 쓰벌! 별 대책도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하면 다여? 대가리에 똥만 가득찬 놈덜...뭔 대책을 세워놓고 반대를 해도 해야 될 것아냐 쓰벌...”

그때 그 남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계단을 오르던 남자가 난짝 끼어들었다.
“보셔, 그렇게만 생각헐게 아녀. 미국놈덜이랑 교포들은 풀먹는 소 잡아먹구 우리한테 파는 소는 뼈다귀 사료 먹여 키운 소라잖어. 째진 입이라고 아가리 함부로 놀리면 못써!”

“뭐라고 째진 아가리라고? 이 시끼가 죽을려고 환장했냐? 이 시끼도 빨갱이 새끼아녀. 개같은 시끼덜, 지난 10년동안 허라는 정치는 않하고 온나라에 이 따위 빨강물만 들여놨어 쓰벌. FTA는 왜 반대허냐, 빨갱이 새끼덜이니까 반대허지!”

“뭐셔? 그럼 촌놈덜은 죄 굶어 죽으란 말여? 그라고 뭐냐, 네 놈 말은 내가 빨갱이란 그말여? 분명히 시방 니놈이 내한테 빨갱이라 혔어! 이런 부싯돌에 대가릴 쳐박고 뒈질놈 봤나!”

금새 두 남자가 멱살을 움켜잡고 엎치락 뒤치락 바닥에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기 시작했다. 김가다가 말릴까 하다가 금방 마음을 거두었다.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길로 지나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 <끝>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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