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는 체제 변화와 사회적 격동 속에서 ‘내로남불’과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가고, 윤리와 도덕과 양심이 사라지면서 적잖은 불안과 걱정을 안고 있다.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언어와 의례 속에 예의를 담아 살아왔다. 존칭과 겸양의 말씨, 호칭 하나에도 관계의 질서와 존중이 담겨 있었고, 청첩과 부고 같은 의례 문서에는 한 집안의 품격이 실려 있었다.
언어가 가볍게 다루어질수록 우리의 생활 문화 역시 그 무게를 잃어가고 있다. 우리는 전통문화를 중요시한다는 말은 하지만 현실은 전통을 지워버리고 각종 언어와 의례와 관련한 예의가 흐트러지고 있어 더욱 안타깝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가의 부고는 그런대로 상주명(喪主名)으로 작성되는 전통을 지키며 모바일로 전달되고 있다. 그러나 결혼식 청첩은 사정이 다르다. 요즘 대부분의 청첩은 혼인 당사자가 스스로 내용문을 작성하고 혼주인 부모는 구색 갖추듯 ‘누구’의 아들, 딸로만 끼워 넣는다.
그리고 겉봉투에는 부모 이름을 버젓이 쓰고 정작 받는 사람의 대부분은 부모의 지인이거나 부모와 거래한 사람들이다. 혼주인 부모의 손님을 거의 면식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결혼 당사자가 직접 초대하는 꼴이며, 이러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효(孝)를 중시하던 사회에서 지금은 청첩장마저도 불효의 문서로 전락한 셈이다.
청첩은 단지 결혼 소식을 알리는 통지문이 아니다. 손님을 초대하고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집안의 정성과 진심이 담긴 초대장이다. 부고 또한 단순한 알림이 아니라 한 생애의 끝을 고(告)하며 남은 이들이 드리는 마지막 예의이다. 그러기에 혼주와 상주는 마땅히 자신의 이름으로 내용문을 작성하여 알림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조상을 공경하고 친지와 이웃에게 도리를 다하는 길이다.
부부간의 호칭 문제도 마찬가지다.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는 풍토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은 조카인가? 남편의 나이가 어리면 남편을 ‘동생’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특히 중년 부인들이 남편을 ‘우리 아저씨’라고 부르는 뒤틀림도 그렇다. 아저씨라고 부르는 부인은 자식에게 부자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언어를 장난처럼 쓰다 보니 가정의 질서와 사회의 품격까지 흔들리고 있다. 예의의 혼란은 결국 사회질서와 인간관계의 품격을 허물고 만다.
예의란 본래 거창한 것이 아니다. 정석대로 쓴 청첩장 한 장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작은 기본조차 무너뜨리며 세상 변했다는 말로 합리화한다. 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이다. 어른이 먼저 어른다워야 한다. 청첩과 부고에서 기본 예의를 지키고 바른 호칭을 되찾도록 어른들이 제 역할을 바로 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 세대도 본을 보고 따라 할 것이다. 어른이 책임을 회피하면서 젊은 세대의 버릇없음을 탓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궁색한 변명일 것이다.
예의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바른 호칭 하나, 성의 있는 알림 한 장에서 시작된다. 언어와 의례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이며 가정을 세우고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이다. 우리가 기본을 지킬 때 서로에 대한 존중과 따뜻한 정은 깊어진다.
작은 것부터 무너지면 사회의 품격이 흔들린다. 바른 언어와 예의의 회복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내일을 밝히는 힘이다. 그것이 자식 세대에게는 본이 되고, 가정과 사회의 품격을 회복하는 길이다. 오늘 우리가 작은 예의를 바로 세울 때 내일의 사회도 바로 설 수 있다.
참고로 일반 가정에서 쓰기 좋은 호칭을 정리해 본다.
-여보: 가장 전통적이고 존중 있는 애칭이다.
-바깥양반/안사람: 전통적이면서도 은근히 존중이 담긴 표현이다.
-○○아빠/○○엄마: 자녀 기준의 호칭, 가족적이고 따뜻한 느낌이다.
-여봉(여보): 귀엽게 변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씨: 동등하고 격식 있는 존칭으로 자연스럽고 무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