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청룡의 해를 맞아 용처럼 기운차게 그리고 힘차고 왕성한 활동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고자 마음을 굳게 다지는 때이다. 

동쪽을 수호하는 용은 오행 중 나무와 봄을 관장하며,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어 사람들은 소원이나 기원을 지내기도 했다. 용은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서 특히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이 청룡이기에 동해의 의미는 더욱 커진다.

용맹함과 정의로움을 상징하는 용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상상 속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용을 이토록 반긴다. 진짜 용을 볼 수는 없지만,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용과 함께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계층의 최고점인 왕실의 혈통이기도 하고, 때로는 궁궐을 지키는 신이 되기도 한다. 민간에서도 용은 멀지 않은 존재였다. 전국 방방곡곡 용과 관련된 마을이나 연못, 계곡, 동굴, 바위 등 자연 속에도 용을 품은 장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술과 신앙과 구비문학, 절기 등 다양한 우리 문화 속에 숨 쉬며 존재감을 드러내었던 용.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다양한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웅장하지 않을까 싶다.

#용용 죽겠지? 어디에서 왔나, 용!
12지신에 속하는 용은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길조를 뜻하는 4령(靈)에도 포함된다. 용은 4령 중에서도 가장 신령스러운 동물이다.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가져오며, 웅비와 희망을 상징해 우리 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상 속의 동물인 만큼, 용은 상상을 초월할 모습을 가지고 있다. 머리는 낙타와 비슷하고 뿔은 사슴뿔을 닮았으며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비늘, 발톱은 매 발톱,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 비늘은 9×9 양수(陽數)인 81개이고 입 주위에는 긴 수염이 나 있다. 중국 문헌 <광아>에 묘사된 용의 모습인데, 이를 토대로 하여 우리나라에도 전해진다.

그렇다면 용은 어떻게 탄생할까? 그 답은 우리나라 설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세상의 미물이 용이 되는 경우이다. 무엇보다 이무기가 도를 닦아 여의주를 얻어 용이 된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뱀이 500년을 살면 비늘이 돋고 500년을 더 살면 용이 되어 뿔과 날개가 돋는다. 지네나 지렁이, 조개, 물고기가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전설도 종종 있고, 지렁이를 토룡, 큰 물고기나 잉어를 어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하나는 용의 출생이다. 해인사 창건설화에 따르면 동해 용왕의 딸이 잘못을 저질러 개의 모습으로 가야산 골짜기에 사는 노인을 찾아갔다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보양 스님이 중국 유학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 아들 이목을 데려왔고, 어느 해 가뭄이 극심해 이목을 시켜 비가 내리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에 따르면 용 역시 출생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용과 용왕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지만, 동해 용왕이 청룡이라면 존재를 구분하는 것이 모호해진다. 생물학적 실체 없는 상상 혹은 문화적 동물로서의 용은 세계 곳곳에 등장한다. 용은 인류의 문명이 있었던 곳이라면 모두 상상하는 존재였다. 그리고 지금도 다양한 모습과 능력, 사건으로 존재하며 우리 문화의 주인공이 되어왔다.

#그 많던 용은 다 어디로 갔을까?
우리의 오랜 역사에서 용은 왕의 상징이었고, 때로는 왕 자체였다. 광개토대왕릉비에 동명성왕이 황룡을 타고 승천했다는 기록과 신라 문무왕은 동해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백제 무왕은 백마강의 청룡이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고려 왕족은 용의 후손이다. 왕건의 선조 중 한 명이 용왕의 혈통을 잇는다고 <고려사>에 전해진다. 용의 혈통은 겨드랑이에 용 비늘이 있으며, 훗날 우왕이 고려 왕족은 용의 자손이니 비늘 자국이 남아있다며 자신에게 남아있는 비늘 자국을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의 상징은 조선까지 이어진다. 조선왕조 창업을 기록한 <용비어천가>에는 이성계의 할아버지가 백룡을 도와 자손에 큰 경사가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고, 북한 지역의 적지와 퉁두란 설화에도 이성계가 청룡을 도와 적룡을 물리쳐서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조선의 용은 보다 적극적으로 왕실의 한 부분이 된다. 조선이 세워지고 정도전이 경복궁을 지을 때, 무학대사는 경복궁 정면의 관악산을 보며 200년 안에 벌어질 화마를 경고했다. 풍수상 불의 산인 관악산에서 뻗는 화기를 다스리고자 세로 현판을 건 숭례문을 세워 ‘이화제화(以火制火)’를 노렸다.

그러나 무학대사의 예언대로 경복궁은 1553년 명종 8년과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불바다가 된다. 폐허로 270년을 보낸 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화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바로 경복궁 경회루 연못에 넣은 청동용이었다.

경복궁뿐만 아니라 궁궐에는 유난히 용이 많았다. 근정전 용좌 천장에는 칠조룡이 있고, 왕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 의식에 사용한 부채인 용선의 양면에는 황룡이 두 마리씩 있다. 왕의 얼굴은 용안, 옷은 용포, 자리는 용좌, 눈물은 용루, 덕은 용덕, 수레는 용거라고 불렀다.

생을 끝낸 왕의 안식처인 무덤에도 용이 있다. 무용총, 환문총, 삼실총 등 집안의 고분 벽화와 요동성총, 약수리벽화분, 팔청리벽화분, 대안리 1호분, 고산리 9호분, 쌍영총 등 평양 고분벽화 속에서도 용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새로운 용을 만들지 않는다. 문명이 바뀌고 시대가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새로이 탄생하는 용과 함께 이뤄갈 새로운 문화가 마냥 기다려진다.

#용 그리고 용이 되고 싶었던 존재들
용은 순우리말로 ‘미르’이다. 우리 민속에서 용은 물의 신이자 비의 신이다. 그래서 농부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얻고자 비를 빌었고, 어부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풍어와 안녕을 빌었다. 새해 첫 용날과 정월대보름 새벽에 우물이나 샘에서 가장 먼저 물을 떠 오면 운수가 좋고, 그 물로 밥을 해 먹으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으며 ‘용알뜨기’를 했다. 용이 우리 생활 곳곳에 깊숙이 자리하면서 사람들 속에 있었다는 증거다.

2021년 국토지리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전국 고시 지명 약 10만개 중 12지 관련 지명은 4,109개이며, 용과 관련된 지명이 1,261개로 가장 많다. 용두산, 용두암처럼 지형에서 유래한 지명, 용이 살던 물에서 유래된 검룡소, 용유담 같은 지명도 있다. 즉 용은 우리 마을이기도 했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 더 큰 자연이기도 했다.

용이 되기 직전의 이무기는 ‘미리’라고 한다. 천 년의 고된 수행으로 여의주를 얻어 승천하는 그 찰나를 인간에게 들켜 한 맺힌 바위가 되어 스러진 이무기의 삶은 마냥 억울하다. 그래서 용 이야기보다 이무기 이야기가 더 많다. 용의 거대함과 찬란함도 있지만 용이 되지 못한 더 많은 존재에 애틋함과 동질감을 느끼는 걸까. 어쩌면 우리의 삶은 여의주를 얻은 용보다 용이 되고자 참고 인내하며 오랜 세월을 보내야 하는 이무기의 삶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때로는 우리 모두가 작은 용이다. 무엇이든 자신의 힘을 찾아 여의주를 얻기 위해 내달리고 있다. 실패하여 이무기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힐 때만 여의주를 얻을 수 있다. 여의주는 실패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도 있다. 용생구자, 용의 아홉 아들이 있는데 단 하나만 용이 되어 승천하고 여덟 아들은 각자 잘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찾아간다. 특히 울기를 좋아하는 용의 셋째 아들 포뢰는 바다의 고래가 너무 무서워 산속 사찰의 종 꼭대기 용뉴가 되어 고래 모양의 당목으로 칠 때마다 더 크게 운다. 그 울음소리로 세상을 깨어나게 한다.

용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승천하지 않고 자신이 잘하는 것을 찾아가는 용생구자 이야기를 되새겨볼 필요도 있다. 우리 모두가 용생구자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