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는 고대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고승이다. 신라 귀족의 자손이면서 화랑도에도 몸담았던 엘리트였다. 요즘으로 말하면 출세가 보장된 ‘스펙짱’인 청년 지식인이다.
하지만 원효의 선택은 불제자였다. 원효의 천재성은 불교의 형식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불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데 있다.
그가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다가 잠결에 해골 물을 마시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일화는 구도의 길을 기존의 틀에서 찾지 않았던 그의 독창성을 상징한다.
원효는 태종무열왕의 사위였다.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와의 사랑도 기존의 틀을 무너뜨린 빅 뉴스였다. 당나라 유학도 다녀오지 않은 무명의 승려와 공주의 사랑은 현대 사회에서도 파격적인 러브 스토리다.
그 결과가 이두를 만든 설총이다. 당대 최고의 유학자는 불제자의 아들이다. 요즘 같으면 불륜 스캔들로 언론의 질타와 과열 취재 경쟁으로 학교나 제대로 다녔을지 모를 일이다.
원효는 조화의 화신이다. 그의 화쟁사상은 삼국통일 과정에서 드러난 불교계의 분열을 해결하기 위한 최고의 비책이다. 그는 ‘십문화쟁론’에서 특정 종파에 얽매이지 않고, 더 높은 차원에서 각 종파의 갈등을 통합하는 이론을 제시했다. 3차원의 시각이 분열이라면, 원효는 4차원의 시각을 제안했다.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가 원효다.
요즘 정치인들은 확증편향의 환자다.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중심적인 억지와 막말에 집착하고 있다. 본인은 봉건 왕조에 머물고 있으면서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 격이다. 원효대사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권을 보면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매우 궁금하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