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는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의 좌우합작 산물이다. 1920년대 일제가 기만적인 문화통치를 통해 민족주의계 독립운동의 분열을 획책했다.
일제의 농간에 넘어간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자치론으로 무장해 식민 통치에 타협하려고 했고, 이에 반발한 비타협적 민족주의세력은 위기의식이 심화됐고, 3.1운동 이후 침체된 새로운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
사회주의계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의해 탄압이 심해지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서로의 처지가 비슷해진 비타협적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는 힘을 합치기로 했고, 그 결과 ‘정우회 선언’이 탄생됐다.
초대 회장에 이상재 선생이 선출됐고, 각지에 지회를 설치하며 왕성한 활동에 돌입했다. 신간회의 강령은 ▲정치·경제적 각성 ▲민족의 단결 강화 ▲기회주의 일체 부인이다. 이들은 효율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이념을 떠나 힘을 합쳤고, 전국 순회강연회를 통해 농민·노동·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신간회의 활동은 1929년 터진 광주학생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진상조사단 파견에서 절정에 이른다. 하지만 신간회는 양 계파의 갈등으로 무너진다.
민중대회를 준비하던 지도부가 일제에 의해 대거 구속되고, 새로운 지도부가 타협적 민족주의계와 협력관계를 시도하자 사회주의계가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해체됐다. 독립운동사에 큰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극심한 좌우 이념 대립으로 인한 남남갈등을 겪고 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현 정부와 이에 적극 반대하는 보수 양 진영은 남북갈등보다 더 적대시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대한민국 번영을 위한 대의(大義)를 위해선 신간회의 전철을 밟아서는 아니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