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는 삼한 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지 얼마 안 지나, 북방의 새로운 패권국가로 급부상한 거란의 위협에 시달렸다. 거란은 중원 정복을 도모하고자 후방의 위협 요소인 고려를 길들이고 싶어했다.
거란의 1차 침략은 한민족 최고의 협상가로 칭송받는 서희 장군의 뛰어난 외교술로 강동 6주 획득이라는 성과를 도출했다.
거란의 성종이 친정한 2차 침략도 외교술로 무난히 넘겼으나, 고려의 영웅 강감찬 장군의 철저한 국방력 강화 정책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란은 자꾸 약속을 어기는 고려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고, 소배압을 필두로 한 10만 대군이 압록강을 넘었다. 강감찬 장군은 귀주에서 이들을 맞이해 치욕적인 패배의 수모를 안겼다.
거란으로 복귀한 패잔병들이 수천명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니 강감찬 장군의 승전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 쾌거다.
거란의 침략에 맞서 승리한 서희 장군과 강감찬 장군의 위업은 무조건 항복을 주장하는 대다수 기득권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취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크다.
고금을 막론하고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익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구한말 다수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할 능력을 상실한 조선 왕조를 버리고 일본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고려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것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비겁한 집권층을 물리치고 결사항전에 나선 서희 장군과 강감찬 장군의 불굴의 의지 덕분이다.
평화는 강력한 국방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허구뿐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비겁한 협상은 항복의 다른 이름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