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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문화원(원장 홍성준)이 휴암(休菴) 백인걸(白仁傑) 선생 탄생 520주년을 기념해 오는 9월1일 오후 2시 양주회암사지박물관에서 학술심포지움을 연다.
양주시와 수원백씨 문경공 휴암종중 후원으로 진행되는 이번 학술심포지움은 ▲명종·선조조의 정국과 휴암의 역할(백원철 공주사대 한문학과 명예교수) ▲휴암 백인걸의 소차류 정론산문 연구(이종호 안동대 한문학과 교수) ▲휴암 백인걸의 철학사상(백종현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 ▲수원백씨 가문의 양주 입향에 관하여(홍정덕 양주문화원 부설 역사문화대학 교수) 등의 강연이 펼쳐진다.
양주문화원은 지난해 9월20일에도 양주회암사지박물관에서 조선시대 문신(文臣)이자 시인과 화가로도 큰 족적을 남긴 월정 윤근수 선생의 업적을 고찰하는 학술심포지움을 열었다.
휴암 백인걸(1497~1579년 9월29일) 선생은 조선시대 중기 문신으로 사림파 정치인이자 성리학자, 작가로 활약했다.
한성부 출신으로 자는 사위(士偉), 호는 휴암, 본관은 수원이다. 선조 때 청백리에 뽑혔으며 파주 파산서원(坡山書院), 남평 봉산서원(蓬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저서는 <휴암집 休菴集> 등이 있다. 인조 때 충숙(忠肅)의 시호를 받았다가 개시(改諡)되어 문경(文敬)이 되었다.
1567년 양주목사가 되었을 때 공납의 폐단을 개혁하는 치적 등을 쌓아 고을 사람들이 기념비를 세웠다.
정암 조광조와 김식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기묘사화로 스승과 동료를 모두 잃고 실의 속에 금강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뒤에 모재 김안국을 찾아가 그로부터 성리학을 수학하였다.
기묘사화 뒤 명종 때까지 계속되는 훈구세력의 발호에 맞서 사림파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선조 초에는 정치적 문제에 연루되어 많은 시간을 파주에 퇴거해 있었다.
이에 선조는 대사헌·우참찬 등의 관직을 내려 부르거나 식량을 내리기도 하고, 직접 편지를 보내 부르는 파격적인 대우를 베풀기도 하였다.
나이가 든 뒤에도 성리학에 대한 탐구를 열심히 했으며, 후일 대학자가 된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을 문하에 배출하였다. 사망할 때까지 조광조를 문묘에 배향할 것을 여러 번 요청하였으며 사후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