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사람을 위협하고 살해하는 등의 패악을 끼치고, 아무 연관 없는 사람을 홧김에 폭행했다는 소식, 테러로 무고한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온다.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워지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을 나다니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좋은 관계를 위해서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이고,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해 봐야 할 지금, 순간의 기치로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구한 백씨 총각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2012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한국구비문학대계> 경기도편 제작을 위한 채록에서 양주시 은현면 봉암리 주민 남선휘씨가 구술한 설화이다.
백인옥이라는 총각이 김 대감집의 식객으로 있었는데, 김 대감의 하인 황씨의 딸이 백인옥에게 반해 상사병이 걸려 죽게 되었다. 황씨가 김 대감을 통해 백인옥에게 딸을 살려줄 것을 청했지만, 백인옥은 불길하다며 거절했고 처녀는 죽고 말았다. 김 대감의 노여움을 산 백인옥은 쫓겨났고, 밤마다 황씨 처녀 원귀에 시달리다가 금강산에 들어가서야 원귀에서 해방되었다.
그곳에서 공부를 하던 중 처녀를 겁탈하고 원귀에 시달리던 타락한 중을 만난다. 괘씸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중을 혼내는데, 중이 절벽에 떨어져 죽는다. 그러자 중을 따라다니는 원귀가 고마움을 표하며 황씨 처녀 원귀를 쫓아내어 준다. 과거를 보러 사회에 나오던 백인옥은 우연히 묶게 된 집에 사는 과부를 유혹하려고 하는데, 과부는 글제 앞부분을 내놓으면서 합당한 글귀로 뒤를 완성하면 허락하겠다고 한다.
‘약결연어금야(約結緣於今夜)면(오늘 저녁에 둘이 인연을 맺으면)’이라는 한 수를 지었고, 거기에 맞는 짝을 지으라고 했다. 짝을 못 채우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과부가 ‘고랑(故郞)이 곡어황천(哭於黃川)이라(옛 신랑이 황천에서 울고 돌아가리라)’는 글을 내 놓으며 가서 공부를 하라고 했다.
거기서 큰 깨달음을 얻고 다음날 아침 일찍 그 집을 나와서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다시 김 대감 집을 찾아 갔는데, 집도 망한데다가 김 대감의 외아들은 죽고 김 대감과 청상과부 며느리만 살고 있었다. 김 대감은 백인옥을 반갑게 맞으면서도 과부 며느리와 정분이 날까 노심초사했다. 밤이 되자 며느리가 저녁에 술과 밥상을 가지고 백인옥의 방으로 찾아가는데, 김 대감이 그것을 보고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양반 체면에 며느리를 개가시킬 수도 없고, 젊은 며느리를 혼자 살라고 하는 것도 불쌍했다. 그렇다고 아들의 친구와 놀아나게 하는 것은 가문의 망신이었다. 방안에서 불상사가 생기면 둘을 죽이고 자결을 하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는 찰나에 며느리는 백인옥에게 평생을 같이 살자고 청하고, 백인옥은 거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락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겠다고 며느리가 칼을 들자, 백인옥이 순간 떠올린 것이 있었다.
“내가 글 한 구절 지을 테니 당신이 글을 채우시오. 그러면 허락하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하고 내놓은 것이 ‘약결연어금야면’이었다. 며느리가 뒷글을 쓰지 못하자 ‘고랑이 곡어황천이라’고 써주면서 “옛 신랑이 황천에서 울고 돌아가리라”고 말했더니 며느리가 통곡을 하고 돌아갔다. 밖에서 그걸 보던 시아버지가 둘을 불렀다.
“내가 너를 몰라보고 내쫓은 죄로 내 자식이 죽고 집안이 망했구나. 너를 내 양아들로 삼을 테니 너희 둘이 좋다면 여생을 함께 보내는 것이 어떻겠느냐?”
이렇게 해서 김 대감은 아들을 얻게 되고 며느리와 백인옥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백인옥이 친구에 대한 의리와 절개를 지켰기에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었고, 죽음으로 끝장 날 수 있었던 세 사람이 평온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