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으로 꾸린 떡방앗간
아침 일찍부터 시루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의정부시 가능2동 골목길에 있는 ‘우리동네 떡방앗간’은 오늘 내놓을 떡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잠깐 사이 길쭉하고 말랑말랑한 가래떡이 쭉 뽑혀 나오고, 하얀 쌀가루 위에 보라색 팥가루가 깔린 시루떡도 나온다. 이렇게 갖나온 떡은 오늘 하루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선보일 물건들이다. ‘우리동네 떡방앗간’ 목영대 대표는 아침에 만든 떡을 진열하고, 찾아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여념이 없다.
미리 많이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만들어 그날 모두 파는 게 목표다. 떡 판매가 가장 큰 목적이 아닌 이 떡방앗간은 20년 전부터 그 자리를 묵직하게 지키고 있던 터줏대감으로, 지금은 마을사람들이 출자하여 이룬 우리동네 협동조합이다. 형형색색 예쁘고 화사한 떡은 없지만 떡집에 있어야 할 떡은 다 있다. 가능동 주민들의 연령대가 다소 높아 예쁜 것보다는 맛과 양을 더 크게 여기는 분위기에 따른 것이다.
요즘 ‘떡’은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소비되지 않고 사람들에게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심지어 제빵자격증은 있는데 떡 제조 자격증은 없다. “떡은 오랜 우리 문화이자 중요한 먹거리이며 우리 농산물 활성화와 맞물린 것인데, 정책으로는 다른 분야보다 홀대 받고 있는 실정”임을 안타까워한 목 대표는 원재료 자체가 그대로 떡으로 만들어지기에 믿고 먹을 수 있도록 천연재료만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협동조합 취지를 살려 연천, 포천, 양주, 동두천 등 경기북부지역과 직거래를 열고, 지역 농산물을 이용하며, 대부분 재료를 그렇게 구하고 있다. 먹거리 문제는 경기북부지역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떡은 자연이고 생명이다”
“떡은 자연이고 생명이다.” 목 대표가 바라보는 떡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하는 것, 즉 마을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마을사람이 생산물을 팔아달라고 가지고 오기도 한다. 오늘도 누가 직접 키웠다는 누런 호박 두 덩어리가 진열대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이것도 우리동네 협동조합의 목적 중 하나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작년에는 4월부터 매달 마을골목장터를 열었다. 의정부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활용해 조합원과 주변지역 생산자가 협동하여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고 나누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마을사람들이 천천히 변화해가는 것을 느꼈다. 상생과 모임이 골목장터의 목적이었다. 골목장터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장터 활성화를 유도하다보니 인근 도시의 지역경제활동단체들도 합류하기 시작했다.
“골목장터이긴 하지만 참여한 상인에게 기본 매출은 필요한 것이었고, 적절한 장소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공원이었다. 가능동은 자연발생 마을이 아니라 30년 전 계획·건설된 곳이라 구획이 나누어진 동네마다 공원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낸 것이다.
“내년에는 벌말공원에서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보다 많은 마을사람들이 참여하고 보다 크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계속 시도하려는거죠.” 목 대표의 계획과 끊임없는 시도는 경기도가 주최한 사회적경제한마당 공모에 선정되는 성과를 이뤄 올해 11월5일에는 의정부 행복로에서, 11월6일에는 연천에서 골목장터를 열었고, 열띤 호응을 불러오기도 했다.
몇년 전만해도 마을 분위기는 살얼음판이었다. 2012년 가능뉴타운이 취소되면서 마을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했고, 몇십년씩 같은 골목을 사용했던 이웃들끼리 적대적으로 변했다. 공동체 사업의 필요성이 제기돼 2013년 5월 출범했지만 담당 공무원의 잦은 교체로 사업을 제대로 진척하기 힘들었던 의정부협동사화네트워크가 작년부터 다시 거론되었다. 마을공동체를 꾸려나간다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동체라는 개념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신뢰, 마을공동체의 뿌리
그 과정에서 또 하나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신뢰’였다. 방앗간에 기름을 짜러 온 주민이 자기가 가지고 온 좋은 곡물이 다른 것과 바뀌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자리를 떠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이 출자자로 나선 조합이기에 절대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안심하고 맡긴다고 한다. 신뢰가 형성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방앗간 바로 옆에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이 나서 주민화합을 위한 일을 시작했고, 2014년 12월 목 대표에게 방앗간 운영을 제안했다. 방앗간 노동이 만만치 않음을 알 무렵, 사랑방모임과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을 합쳐 우리동네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방앗간 일뿐만 아니라 조합의 사무, 기관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최혜영 사무국장의 힘은 이곳을 함께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작년 1월 방앗간을 인수한 이후 마을사람의 힘으로 조합은 꾸준히 성장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동네 떡방앗간은 소통의 중심이 되는 사랑방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모두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고, 서로에게 큰 힘이 되면서 비로소 마을은 하나가 되었다. 남경필 도지사 공약으로 급속한 도시화 속에 사라진 마을공동체를 회복시키려고 시행 중인 따복공동체(따뜻하고 복된 공동체) 지원을 받아 지금과 같은 사랑방의 모습으로 새단장하기도 했다.
내년에는 벽화그리기 사업을 할 계획이다. 목 대표는 “침체된 골목 분위기를 바꾸기에 가장 좋은 사업”이라며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해 ‘이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야’라면서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