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실록> 고종 31년 12월10일에 나오는 글이다.
“전라감사(全羅監司) 이도재(李道宰)가 전보(電報)로, ‘이 달 9일에 비적(匪賊)의 괴수 전봉준(全琫準)을 산 채로 잡아서 압송하여 올려 보내겠습니다’라고 아뢰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이다. 전봉준이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킨 계기는 고부군수로 부임한 탐관오리 조병갑의 악행 때문이었다.
희대의 탐관오리인 조병갑은 백성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매기고, 양민의 재산을 갈취하는 등 만행을 자행하고, 만석보 밑에 다시 보를 축조하는데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이를 핑계로 불법으로 700섬의 수세를 징수했다.
조병갑의 만행을 보다 못한 전봉준은 그 시정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1894년 1월 1,000여 명의 농민과 동학교도를 이끌고 고부 관아를 습격했다. 관아의 무기로 무장한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은 부당하게 빼앗긴 세곡을 농민에게 나눠주고 부패한 관원들을 감금했다.
사태가 이 정도에 이르자 조정은 조병갑 등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이용태를 안핵사로 파견해 사태를 수습하고자 했으나, 현지에 나온 이용태는 오히려 민란의 책임을 동학교도에게 돌리며 체포·투옥·살해하고 가옥을 파괴하는 등 동학교도 탄압에 나섰다.
분노한 전봉준은 보국안민(輔國安民)·제폭구민(除暴救民)의 기치를 내걸고 재궐기해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을 무찌르고 전주성을 함락했다. 이것이 구한말 백성들의 피맺힌 항쟁인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다.
요즘 들어 이번 정부의 고위공직자 뇌물수수 의혹사건은 왜 이리 자주 들려오는지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아직도 조병갑과 같은 탐관오리가 설치고 다닌단 말인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