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뒤에서 사나운 코끼리(세월)가 쫓아오자,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마른 우물(생사) 속으로 들어가, 중간에 늘어진 등넝쿨(생명선)을 붙들었는데, 그 우물 밑에는 악한 용(악도)이 있고 그 옆에는 다섯 마리 독사(몸뚱이)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으며, 희고 검은 쥐 두 마리(낮과 밤)가 교대로 나타나서 붙들고 있는 등나무 넝쿨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러한 처지에 머리 위 나무에 매달려 있는 벌집에서 떨어지는 달콤한 다섯 방울의 꿀(오욕락)을 받아먹으면서, 그 맛에 도취되어 자기가 지금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도 잊고 있었다.’ <정명경(淨名經) 방편품(方便品)에서>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다. 육신 말이다. 우리나라 같은 고령화 사회는 이제 여러 가지 잘 사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평화롭고 품위있는 죽음도 중시되고 있다. 게다가 노후준비와 은퇴자금 마련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덩달아 죽음까지 대비하는 실버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민간설화인 기로전설(棄老傳說)에는 “일흔이 된 노인을 아들이 풍습대로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 할 때, 함께 간 노인의 손자가 그 지게를 가져가려 하자 아버지가 까닭을 물은 즉, 다음에 아버지가 일흔이 되면 실어내다 버리겠다는 대답에 아비는 깊이 깨달은 바 있어 다시 늙은 아버지를 지고 집으로 돌아와 지성으로 공양하였으며, 이후로 노인을 버리는 풍습이 없어졌다”고 전해진다. 실제 여부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늙고 병든 사람을 구덩이 속에 버려두었다가 죽는 것을 기다려 장사지냈다고 하는 고려장은 궁핍한 시대의 비정한 시대상을 고발한 것으로도 족하다.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 이마무라 쇼헤이는 1983년 '일본판 고려장'을 다룬 <나라야마 부시코>로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도덕성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생존의 본능만이 지배하는 공동체를 무대로 한 인간과 자연의 원초적인 생명력,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한 성찰을 영상으로 담아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최근 아무개 시장의 장모가 돌아가셨다. 그는 잘 나가던 시절 본인의 모친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다. 그 모친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말이 많았다. 이번에는 그의 장모의 별세에 대해서도 개운치 않은 이야기가 나돈다. 그도 이제는 많이 늙어가고 있다. 희고 검은 쥐 두 마리가 교대로 나타나서 붙들고 있는 등나무 넝쿨을 갉아먹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