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소와는 다른 제스처를 취했다. 30년 넘게 정치적 앙숙으로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나의 정치적 계승자들’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보다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였다. 이제는 민주당이 작지만 강한 힘을 발휘할 때라며 당 대 당 통합과 외부 인사-고건, 정몽준 등-의 영입을 직접 거론했다. 열린우리당의 참정연과 영남권 인사들도 크게 반발하지 않고 목소리를 아꼈다.
한국 정치를 보노라면 쉽게 파악되는 한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징적 인물이 한마디 던지면 '해쳐모여식’의 조직간 통합이 너무 쉽게 일어난다는 점이다. 평소 그렇게 싸우던 조직들이 자신이 했던 말은 잊어버리고 '우리는 동지였어'라는 말을 건네며 화사하게 웃는다. 한국 정치는 몇몇 정치인의 발언에 정치적 신념과 방향은 늘 온데간데 없고 단지 감정의 정치와 '우리가 남이가' 동감의 정치로 정리된다.
최근 정치권의 움직임을 보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떤 존재이며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잠시 고민하게 되었다. 왜 그가 갑자기 김영삼 전 대통령과 화해를 이야기 했을까? 왜 그가 열린우리당을 자신의 계승자라고 선언했을까? 왜 지자체 선거 직전이 아닌 오늘일까?
바로 뉴라이트 때문이다. 얼마전 개혁적 건전 보수를 기치로 내건 새로운 보수연대체가 발족됐다. 3개 조직으로 구성된 뉴라이트는 가장 큰 정치세력으로 보수 기독교와 그 관련 단체를 섭렵했으며 이를 위해 무려 3년을 준비했다고 한다. 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신뢰와 반공이데올로기를 정신적 모태로 하면서도 지역주의를 비판하는 그들에게 이제는 한나라당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소금이 되어 줄 것이라 많은 세대들이 바라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고민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노무현 정부의 정책 불균형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2. 뉴라이트가 11월 200여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 어떤 식으로 개입할 것인가?
3. 한나라당과의 연대로 외연이 커지면서 한국 정치는 또다시 얼마나 후퇴할 것인가?
첫 번째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뉴라이트의 시작이 노무현 정부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 응집력도 노무현 정부의 불완전한 정책 집행과 정치노선으로 인해 견고하고 강해지고 있다는데 있다. 뉴라이트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는 조직이기에 그렇게 많은 교회 지도층들과 보수 학계, 보수 시민단체 운동가들이 뭉친 것은 아니라고 본다. 노무현 정권의 불명확한 정치노선과 불안한 위기대처능력이 지속되면서 ‘정말 아니야’라는 반응이 도처에 깔리듯 내려앉으면서 심리적 반작용으로 나타난 면이 크다.
17대 국회 초기 보여준 4대 개혁법안의 처리 방식과 타협은 속도감을 상실한 채 질질 끌리면서 보수세력에게 강력한 연대 이유를 안겨주었다. 이를 잘 안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어떻게든 현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직접 나선 것으로 판단된다. 정말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나 리더십과 실행력이 없는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두 번째 질문은 800만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이다. 늘 20대 정치인을 외쳐왔던 필자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는 질문이자 가장 두려운 질문중 하나다. 뉴라이트에 속한 대학생들이 과연 정치적 학습과 스스로 정치적 좌표 세우기를 하고 참여했을까? 이런 정치적 세력의 응집이 한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고민을 해 보았을까? 그리고 현 대부분의 총학생회가 선거 국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에 대해 대답을 바로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사회가 다변적이고 역동적이며 상향식으로 개인 조직화되면서 뉴라이트는 새로운 기회를 맞았고 기존 학생회는 반성의 기회를 맞았다. 선거 유세에 돌입한 대학에게는 우리 대학의 문제가 무엇인지와 함께 학생 개인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사회/대학/동아리/과/학생을 어떤 식으로 연계해야 할지 체계적으로 대안을 모색하고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너무 늦었고 너무 빨랐다.
마지막 질문은 2006년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2007년 대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분석된다. 조선일보는 11월8일자 신문에서 이제 한나라당은 탈 서울대, 탈 전문인을 선택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현장가와 운동가를 모집해 조직을 보다 전투적이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렇다. 바로 조선일보는 이미 미래를 정확히 그려가고 있다. 뉴라이트는 바로 현재의 한나라당을 바꿀 수 있는 외부의 강력하고도 유일한 힘이자 에너지이며 피와 살이다. 만약 조선일보의 시나리오와 주장으로 역사가 흐른다면 한국 정치는 다시 ‘해쳐모여’와 ‘감정의 정치’로 돌아가고 동시에 별반 다르지 않는 정치세력간 싸움으로 채워질 것이 분명하다.
‘도대체 누굴 위해 한국 정치의 역사는 되돌아가는가?’
이런 질문을 던져도 들을 정치인은 없다. 도로 민주당이 될 열린우리당, 강한 군대를 갖게 될 한나라당에 과연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그리고 20대와 대학생은 어떻게 이를 읽어내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