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쨌거나 누군가에게 따귀를 맞는다는 것은 여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김가다도 남에게 따귀를 맞은 일이 딱 두 번 있었다는 기억을 되살렸다. 한번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는데 그날 함박눈이 눈앞을 가릴만큼 쾅쾅 쏟아지던 날. 국사시간이었다. 김가다는 화장실이 급하다며 국사선생님에게 엄살을 떨었다. 그리고 재빨리 화장실로 달려갔다. 2학년 3반 화장실에서 파란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약속했던 대로 종태가 그 시간에 먼저 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음이 틀림 없었다. 화장실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짜고짜 선생님의 솥뚜껑만한 손바닥이 김가다의 뺨에 벼락치듯 작열했었다.
김가다는 그때 국사선생님에게 맞았던 따귀가 너무도 아팠었다.
그리고 한 5년전 쯤 일이었다. 술이 거나하게 되어 전철 손잡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때였다. 갑자기 김가다는 누군가가 뺨을 불이 나도록 올려 부치는 바람에 술이 확 깨는 느낌이었다.
“왁! 누, 누구얏? 왜 죄없는 사람의 따귀를 치는거얏!”
“이 자식이 나이께나 쳐먹어 갖고 전철 속에서 뭐하는거얏. 왜 남의 엉덩일 더듬어 자식아?”
“내 내가 언제 아줌마 궁뎅일 더듬었다고 그래 진짜. 화이고 환장하겠네에.”
“씨꺼! 자식아! 경찰에 칵 고발하기 전에 아구리 닥치고 있어!”
“........!!”
그때 그 병어주둥이에다 조폭처럼 험상궂게 생긴 여자에게 느닷없이 얻어맞은 따귀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악몽으로 김가다의 삶의 한구텅이를 시퍼렇게 멍들여 놓고 있었다.
좌우지간 김가다는 그렇게 생애 딱 두 번 남에게 따귀를 맞은 기억이 있다.
“참 더러워서 진짜. 남은 따귀 한대 맞고 2천만원을 받아 챙겼는데, 난 죄도 없이 괴물같은 여자한테 맹물처럼 따귀만 맞고 말이지.” 김가다는 진피아들처럼 늘 사는 꼴이 그랬다. 언제나 나자빠지긴 뒤로였는데 깨지는 건 코빼기였다.
그래도 김가다는 자신의 삶의 모습이 여간 다행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권력 쪽에다 목을 기린처럼 빼물고 부스러기라도 주어 먹을까 호가호위 하지도 않고 뭐 누가 실수로 따귀한데 때렸다고 해서 남의 재산 억울하게 등처먹은 일도 없고 반식재상 놈들처럼 부동산 투기 죽어라 긁어 모으는 짓도 비상처럼 싫어했다. 왜냐하면 그런 인간들의 종말이 하나같이 똥처럼 지저분하게 끝나고 마는 것을 세상 역사를 통해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저 건강해서 뼈심들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사랑하는 진실만큼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는 거야...”
김가다는 오늘도 그것이 너무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바이블 속의 한 구절을 되새기며 감격해 했다.
“Better a little with righteousness than much gain with injustiness.(작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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