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나라에 대살년이 졌던 그해 여름, 김가다는 조그만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양주땅 회암리란 산촌으로 숨어들어 두멧놈이 된 채로 제도권 쪽으로는 아예 소식을 딱 두절해 버렸다.
그리고 그 양주땅에서 어렵사리 남의 땅을 천평쯤 빌려서 익숙치 못한 솜씨로 실머슴처럼 농사도 짓고 돼지도 한 30마리 키워가면서 죽은 듯이 틀어박혀 청년시절을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봄날, 오늘처럼 꽃비가 흩날리고 봄나물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밭두렁을 조그만 호미로 호비작거리며 어느 마을에 사는지도 모르는 소녀 하나가 나물을 캐고 있었다. 김가다는 그때 웃통을 훌렁 벗은 채로 새끼돼지들을 삶아먹이려고 막 잡아온 개구리랑 뱀들이 아우성 치는 깡통을 우물가에 내려 놓고 땀을 닦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나물캐던 소녀가 주첨주첨 다가와서 수줍은 미소로 말을 걸어왔다.
“저...물 좀 마셔도 되요?”
“물? 그럼, 펌프로 퍼마심 되지.”
순간 소녀는 나물바구니를 허리에 매단 채로 죽을동 살동 모르고 밭틀논틀 사이로 내달리고 있었다. 아마도 깡통 속에서 한데 어울려 우글거리는 뱀이랑 개구리를 보고 혼비백산 했던 모양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우스워서 김가다는 그만 혼자서 하늘을 쳐다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잠자던 돼지들이 후다닥 깨어 일어날 정도였다.
“크하하핫! 뱀 깡통을 본 모양이군.”
그리고 얼마 후 양주땅에 있는 조그만 시골중학교에 영어선생님으로 부임하여 첫 출근을 했던 날, 김가다는 첫 교시에서 유난스럽게 공포의 눈망울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 소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또 교실이 떠나갈 듯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영문을 모르던 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어쨌거나 그 후 7년쯤 세월이 흐른 뒤 그때 그 초련의 소녀는 12년이나 어린 앳된 모습으로 김가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난과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남편을 끝내 소설가로 세상 속에 우뚝 세워 놓았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수필가로서 ‘그래도 삶은 아름답다’며 기염을 토해내더니 이제 강북에서는 아무개 하면 다 고개를 끄덕일만큼 유명한 한복 디자이너가 되었다.
오늘 김가다는 모처럼 기차를 타고 봄기운이 가득하게 졸고 있는 들녘을 지나 신탄리의 어느 밭두렁에 퍼질러 앉아 지난 날을 되새겨보면서 감회에 젖어 있는 중이었다. 30여년 전 새처럼 작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동네 어른들의 눈길을 피해 그가 살고 있던 오두막집으로 열심히 영어를 배우러 찾아왔던 그 소녀의 얼굴이 어느새 잔주름이 일기 시작하는 아내의 얼굴에 오버랩되어 어쩐지 가슴이 서리에 찔린 듯 쓰리고 아팠다.
“마누라, 늙지마라. 그때 대바구니 차고 내가 살았던 게딱지만한 오두막 집 근처에 처음 나타나서 동그랗게 눈을 뜨고 쳐다보던 소녀처럼 그 얼굴 그 수줍음으로 그냥 그대로 있어주라. 그 옛날 30년 전에 내 오두막 근처로 나물캐러 왔다가 처음으로 마주쳤던 그 눈빛. 선연했던 소녀적 그 얼굴 그대로 있어봐...”
그때였다. 가방 속에 숨겨져 있는 핸드폰이 악을 바락바락 쓰기 시작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