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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저자 |
1992년 ‘잭 캘리’라는 신문기자는 소말리아 내전을 취재하고 있었다. 기자 일행이 어느 마을에 들어섰을 때, 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마을 어귀에서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죽어가는 소년을 그들은 발견했다.
소년은 물끄러미 아무 감정도 없이 기자들을 쳐다보았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사과를 꺼내 그 소년에게 주었다. 그러나 사과 한 개 무게가 무거워 그 소년은 사과를 놓치고 말았다. 기자는 그 사과를 반으로 쪼개 그에게 주었다. 그 소년은 사과를 받아들고 힘겹게 일어났다. 그리고 비틀거리며 어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그 소년의 뒤를 쫒아갔다. 뒤에서 따라오는지 의식도 못하며 소년은 어느 후미진 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그 소년보다 어린 아이가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소년은 그 아이를 무릎에 누이고 사과를 입으로 베어 곱게 씹어서는 누운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고 삼키라고 턱을 올렸다 내렸다 하며 안간힘을 다해 그 사과를 먹이는 것이었다.
그 어린 아이는 그 소년의 동생이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보름째 먹을 것이 있으면 그렇게 동생에게 가져다 먹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대로 둘 수 없어 일행은 그들을 난민캠프에 데려다 주었다. 얼마 후 끝내 형은 죽었다. 그러나 동생은 살아남았다.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해 쓰러져가는 형이 자신의 고통을 무릅쓰고 동생을 구하기 위한 사랑의 노력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다.
그에게는 동생을 살리기 위한 사랑이라는 의미 있는 노력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지 않았나 싶다. 나의 고통이 누군가에게 사랑이 되고 존재가 되고 생명이 되고 의미가 될 때 오히려 나의 고통은 감사와 행복으로 바뀔 수 있으리라. 우리의 삶이 고통과 희생을 통해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얼마 전 부산에서 숨진 지 5년이 지난 한 할머니가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이 건물 위층에 사는 모자는 경찰에게 되물었다. “1층에 누가 살았습니까? 우리는 빈 방인 줄 알았는데….” 이 할머니는 조사 결과 2남1녀의 자녀를 두었는데 세 자녀 모두 다 시체 인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남편과 결혼 후 16년을 살다가 이혼하였고 그 후로는 홀로 독거생활을 하였으며, 14년 전에 부산 이 집으로 이사온 후 보증금 600만원에 월세 10만원씩 내고 살았다고 한다. 5년간 월세를 내지 않았지만 집주인은 보증금에서 제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보증금이 바닥나자 집주인은 집을 방문했고 문이 잠겨 열리지 않아 경찰에 신고해서 5년 만에 백골로 발견된 것이다.
큰 아들은 개인사정을 이유로 시체 인수를 거부했고 둘째는 30년 전 헤어져서 아무런 정도 없으며 이미 모자 관계가 아니라고 거부했으며 딸은 어머니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고 이미 남이라고 하며 한사코 시체 인수를 거부해 결국은 무연고 처리되었다.
소말리아 소년과 백골이 된 한국의 할머니를 비교해보면서 관심과 사랑이 메말라버린 우리의 현실이 매우 슬프게 느껴진다. 이웃과의 소통이 단절되어 외롭게 고독사로 이어지지 않도록 서로가 관심과 배려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나타내야 할 때인 것 같다. 관심과 배려 속에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웃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웃과 나와의 가장 가까운 거리는 웃음이고 이웃과 나를 연결하는 다리는 웃음인 것이다. 웃음운동은 우리 사회 노년의 외로움을 이겨내고 고독사를 막아주는 가장 건설적인 방법이다. 웃자! 웃자! 웃자! 하루에 한 번 이상 전화나 만나서 웃을 수 있는 웃음친구들을 만들면 우리 사회는 새로운 희망이 싹 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