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2025.05.22 (목)
 
Home > 기획/연재 > 김실의 쌍기통 코너
 
인생유전
  2007-09-06 10:10:05 입력

이런 인격을 친구라고 불러도 되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온 터이니 친구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김가다는 생각했다. 이름이 김정일이란 그 친구는 잊혀질만 하면 유령의 꼬리처럼 전화가 오곤 하는 것이 김가다로서는 영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광장시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물건을 사서 장똘뱅이 가방에다 꼭꼭 챙겨넣고 있을 때 허리춤에 걸려 있는 핸드폰이 뚜껑을 열어달라고 악을 바락바락 썼다.

“여보세요? 네? 누, 누구시라구요? 김정일...오 김정일. 자, 자네가 또 왠일이야.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만나자구? 그...글세. 나 지금 한참 바쁜데...아, 알았어. 그럼 종로5가 먹자골목으로 나와 그럼.”

김가다는 가방을 단골집에 맡겨놓고 잘 아는 순대국집 아줌마 앞에 마주 앉았다.
“뭘 드시려구? 순대? 아님 족발? 시원한 콩국수를 먹든지.”
“아뇨. 좀 있으면 친구가 올겁니다. 오면 시킬게요.”

김가다는 청계천 쪽에서 꾸역꾸역 밀려드는 인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잠깐 상념에 잠기는듯 했다. 김정일은 옛 중앙극장 맞은 편에 있는 초원음악실에서 알게 된 이래로 안동 36사 예비훈련소까지 함께 나온 군대동기였다. 우연의 일치랄까. 김가다는 그와 춘천 103보충대까지도 함께였고 적막고산 중턱에 누에처럼 엎드려있던 1중대 4소대에서 운명처럼 함께 근무했었다. 그는 당시 군대에서의 시쳇말로 고문관이었다.

그는 돈이 엄청 많은 집에서 5남 1녀중 막내아들로 아버지의 막강한 배경과 돈의 힘으로 K대학 사학과에 다니다 입대했는데 4소대원들 모두가 김정일 때문에 군대생활 하기가 너무도 괴로웠다. 그는 한번도 자신의 팬티를 손수 빨아입은 적이 없었다.

자신의 팬티가 더러워지면 벌겋게 불타고 있는 빼치카 속에다 쑤셔넣어 버리고 내무반에 빨아 넌 다른 사람의 팬티를 몰래 훔쳐입곤 했다. 팬티를 잃어버린 쫄다구 사병은 허구헌날 고참한테 쪼인트 깨지기가 일쑤였다. 남들은 일년에 한번 가기도 힘든 휴가를 녀석은 무슨무슨 이유 등으로 몇 번씩 갔다왔고 그가 귀대할 때마다 중대장과 선임하사는 물론 고참병들의 입이 귀에 걸리도록 찢어졌다. 고급양주라든가 외제담배, 고급 가스라이터 그리고 현금 등으로 그들에게 뇌물공세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그는 남들이 눈만 뜨면 벙커작업하랴 원목작업하랴 도로보수작업하랴 눈코 뜰새없이 중노동을 하는데도 녀석은 무슨무슨 핑계를 대고 환자인척 내무반 침상에서 딩굴며 만화책이나 뒤적이고 있었다. 행정병까지도 빠짐없이 받는 유격훈련마저도 녀석은 빠졌다. 남들은 한번도 나가기 힘든 외출외박을 녀석은 한달에 두 번씩 외박을 할만큼 지더렸다. 그리고 쌍과부집 논다니년들과 질편하게 몸을 풀고 이튿날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며 귀대하곤 했었다. 병사들은 그렇게 쥐알보스로 똘똘 뭉친 이 김정일을 보고 한탄했다.

“쓰으바! 돈이 웬수로구나. 우리 아부지는 우째 그렇기도 가난했노. 돈좀 벌어놓제...애고...”
그는 절대로 된장국을 안먹었다. 김가다가 된장국을 안먹는 이유를 물어보면
“야, 그거 원 똥물을 풀어놓은 것 같아서 먹겠냐?”
“...!”

제대를 하고나서 김가다가 회암리의 시골에 파묻혀 돼지똥을 치우고 있던 어느 여름날 그가 그 산골짜기에 찾아왔었다.
“야, 돼지키워서 돈 얼마나 버냐? 냄새가 지독하군. 좀 떨어져 앉아라. 먹구사는 꼴허군 참 한심하네. 돼지가 너인지 네가 돼진지 구별이 않가네.”
“그래도 난 이렇게 시골에 사는 게 좋다. 서울엔 안갈거야.”

그는 그때 김가다의 마누라를 보고 또 혀를 찼었다.
“촌여자냐? 참 너두 한심허다. 대학공부까지 한 놈이 그래 이런 촌구석에 틀어박혀 촌닭색씨나 겨우 얻어 살다니. 야, 내가 술한잔 끝내주게 살테니 제발 옷좀 갈아입고 나와라.”

그의 성화에 못이겨 김가다가 옷을 갈아입고 그를 따라 나섰다. 그때만 해도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몇 안되는 1980년대였다. 그는 김가다를 데리고 의정부에 있는 백악관이라는 술집으로 데리고 갔었다. 대낮인데도 수많은 남녀들이 붙잡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김가다는 가시방석에 앉은듯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홀로 밭에서 고추를 따고 있을 아내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 견딜 수 없게 되자 그는 백악관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차라리 고추밭 이랑에 막걸리 통을 갖다놓고 된장에 풋고추 안주로 한사발 들이키는 게 백번 속편하겠다...”
일구난설 일일이 손꼽아 볼 수 없을만큼 김가다에게 있어서 녀석은 징그러운 외계인이었다. 한 10년 소식이 뚝 끊어져 있기에 궁금하긴 했지만 앓던이가 빠진듯 시원했던 녀석의 목소리를 오늘 또 듣게 되었다 생각하니 울컥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조금후 그가 나타났다. 순간 김가다는 가슴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녀석의 머리는 하얗게 부서져 있었고 피부는 저승꽃이 가득하게 피어있는데다 어느새 닷곱장님을 닮아있었고 주름살의 계곡이 낭떠러지처럼 깊이 패어있었다.

등허리마저 구부정한 것이 옛날의 말살스럽고 당당했던 김정일이 아니었다. 그가 김가다 옆에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오랜만이다. 별로 안늙었어. 젊은 마누라 델구 살아서 그래?”
김가다는 순간 안쓰럽다는 생각이 훅 밀려오며 가슴이 우울해지는 느낌이었다.
“야, 왜 그렇게 파삭 낡아버렸냐?”
“늙을만 하니까 늙은거지 뭐. 여자를 한둘 데리고 살았어야지.”
“아직도 여자들 치맛폭 속에서 사냐?”
“그럼! 여자랑 술이 없는 세상이 어디 세상이냐? 야 그나저나 여기앉아 술먹어야 돼? 어디 딴데 없냐?”
“...”
“요새도 그 한심한 교회 다니냐? 그리고 아직도 시장바닥에서 노냐? 그 나이 되도록 밥먹고 사는 꼴이 맨날 그게 그거냐?”
“...”

“요즘 탈레반에 납치되었던 놈들 비난일색으로 교회가 어디 살아 남겠어? 아아니 그놈들이 정신이 빠진 놈이지 그래,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구 국민들 마음 고생시키구. 국제적 왕따가 되게 하구. 얌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당장 교회 때려쳐 임마.”
“...”

“그나저나 나 오늘 갑자기 나오느라구 지갑을 놓구 나왔어. 야 김가다 한 십만원만 꿔주라. 내 이자 곱빼기로 쳐서 갚을게.”
김가다가 주섬주섬 원고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래 죄없는 사람 납치해다 죽인 놈들이 짐승보다 못하지 그 젊은이 뭘 잘못했니? 너처럼 청춘을 그렇게 취생몽사하며 보내야 옳은거냐? 우리도 이제 좀 잘 살게 되었으니 불쌍하고 가난한 이웃을 좀 도와주며 살겠다는 순수한 그 젊은이들이 잘못됐다면 대체 넌 뭐냐. 10년만에 만난 친구에게 겨우 돈 십만원을 꾸어달라는 네가 정의라면...이 한심한 놈아...술 한잔 값 내가 내주고 갈게. 그거 마시면서 잘 좀 생각해봐라. 너는 그 젊은이들에 비하면 발가락의 때만도 못해 임마.”

김가다는 하늘을 쳐다보며 가슴으로 속삭였다.
“하나님. 이렇게라도 살게 해주시니 참 감사합니다...이만큼 잔다리 자근자근 밟아온 장돌뱅이 신세가 너무도 감사합니다.”<끝>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경기북부시민신문 님의 다른기사 보기
TOP
 
나도 한마디 (욕설, 비방 글은 경고 없이 바로 삭제됩니다.) 전체보기 |0
이름 제목 조회 추천 작성일

한마디쓰기 이름 패스워드  
평 가









제 목
내 용
0 / 300byte
(한글150자)
 
 
 
 
 
 
감동양주골 쌀 CF
 
민복진 미술관 개관
 
2024 양주시 도시브랜드 홍보영상
 한전MCS 경기북부지사 전 지점
 의정부소방서장, 제21대 대통령
 “양주시, ‘인구문제 인식개선
 의정부청소년꿈키움센터, 교사대
 의정부시 장애인 수영선수, 제17
 의정부시 “주민 약속 이행하며
 [기획] 청소년 셰프의 요리, 지
 양주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2025
 의정부시자원봉사센터, ‘2025년
 제1회 동두천 보훈헌혈축제, 동
 서정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장학
 의정부도시공사 이동지원센터,
 양주시, ‘경기양주테크노밸리’
 의정부시, 용현산업단지 완충녹
 양주도시공사 노조 “인사제도
 경기도, 안동 산불피해 마을 재
 양주시, ‘2025 지역특화 청년
 보산초등학교, 학교문화 책임규
 동두천양주교육지원청, ‘세계
 연천군, 바우처택시 15대로 늘려
 생연1동행정복지센터, 경기도의
 동두천꿈나무정보도서관, 2025년
 동두천시, 식중독 발생 현장대응
 동두천시 6·25참전유공자회, 국
 신한대학교, 반기문 전 UN 사무
 동두천양주교육지원청, 옥정·회
 녹양동 주민자치회, 2025 녹양평
 의정부시 보건소, 말라리아 신속
 의정부시, 의료급여 수급권자 자
 의정부시 청년센터, 6월 프로그
 
정진호 의원 “시장 마음 바뀔 때마다 개발방향 바뀌는 한심한 의정부”
 
송추정신병원-양주경찰서, 정신질환자 응급대응 업무협약
 
“UBC 사업, 시민 공론장에 올려야 합니다”
 
덕도초에 71세 만학도 입학…“배움에 나이는 없죠”
 
양주시 가족센터, 뽈레미농에서 ‘작약 꽃다발’ 진행
 
제1회 동두천 보훈헌혈축제, 동양대에서 두 번째 행사 진행
 
글로 기록 남기기의 중요성
 
일용직 근로자의 퇴직금
 
문과들이 다 해 먹는 나라 대한민국
 
점검 넘어 변화의 시작이 되다
 
한전MCS 경기북부지사 전 지점 ‘따뜻한 나눔’
 
 
 
 
 
 
 
 
 
 
 
 
 
 
섬유종합지원센터
 
 
 
신문등록번호 : 경기.,아51959 | 등록연월일 : 2018년 9월13일
주소 : (11676) 경기도 의정부시 신촌로17번길 29-23(가능동) 문의전화 : 031-871-2581
팩스 : 031-838-2580 | 발행·편집인 : 유종규│청소년보호책임자 : 송수연 | 관리자메일 : hotnews24@paran.com
Copyright(C) 경기북부시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