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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하 웃음행복센터 원장 의정부제일간호학원 원장 웃음치료 전문가(1급) <웃음에 희망을 걸다>, <웃음희망 행복나눔> 저자 |
하하웃음행복센터에서는 동요나 유명한 곡에 맞춰 가사를 개사하여 노래를 부른다. 클레멘타인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도 있다.
“어여쁘고 아름다운 봄꽃송이 내게와 힘든삶이 젖어있는 내맘위로 해주네/웃으면서 웃으면서 내게오라 그대여 꽃모자를 흔들면서 내게오라 그대여/여름숲은 깊어가고 내사랑도 깊어가 멀고험한 가시밭길 피로한줄 모르네/웃으면서 웃으면서 내게오라 그대여 내영혼에 행복웃음 사랑으로 되었네/
풀벌레들 울음소리 별에닿는 가을밤 그리움이 사무치는 아픈가슴 위로해/웃으면서 웃으면서 내게오라 그대여 소망으로 인도하는 큰웃음을 웃어봐/소록소록 마른가지 눈쌓이는 겨울밤 하늘가엔 쌍둥이별 나를축복 해주네/웃으면서 웃으면서 내게오라 그대여 사랑웃음 가득담아 당신에게 보내리”
개사한 가사가 아름다워 4절까지 적어보았다. 그런데 아름다운 가사말이라도 곡조가 슬프게 인식되어서인지 개사한 가사의 감흥이 나지 않고 왠지 슬퍼진다. 이 노래는 미국에서 1849년 일확천금의 꿈을 갖고 서부 캘리포니아 금광을 찾아 헤매며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기도 하고, 인디언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도 걸려 죽을 고생을 하는 서부 개척사의 이면을 나타내는 슬픈 노래다.
금맥을 찾아 헤매는 이들이 1849년을 기점으로 대거 서부로 이동해 이들을 포티나이너(Forty-niner)라고 부른다. “동굴과 계곡에서 금맥을 찾던 포티나이너에게 클레멘타인이라는 딸이 있었네. 그들은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에서 살았지. 아버지는 고기 잡는 어부고 딸은 철모르는 딸이었지. 그러나 딸은 젊은 남자를 따라 영영 떠나고 말았어. 내사랑아 내사랑아 나의사랑 클레멘타인아. 늙은 애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로 갔느냐?”
이 포크송은 가사가 슬펐는데 우리나라에 와서 더 슬픈 가사로 바뀌었다. “엄마 엄마 나 죽거든 뒷산에다 묻어주.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주.” 어릴 때 왜 이런 슬픈 노래를 불렀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짠하다. 금을 찾아 강물을 휘젓고 이름 모를 계곡에서 말없이 죽어갔던 황금의 꿈. 우리나라에서도 노다지를 찾아 삼천리 방방곡곡과 만주벌판을 헤매던 우리 할아버지들이 오버랩되면서 또 다른 슬픈 감정이 밀려온다. 이런 노래에 아무리 아름답고 웃음의 가사로 사랑, 희망, 행복, 소망을 담아도 밑으로 흐르는 슬픔은 어쩔 수 없나보다.
잘 아는 사람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중국에 사는 한국 동포인데 돈 벌려고 한국에 나와서 공장에서, 농장에서 궂은 일을 열심히 하였다. 그런데 심근경색증이 와서 한국에서 응급수술을 받았고 모아 놓은 돈을 다 써버렸다. 다시 또 회복되어 열심히 돈을 모아 중국으로 돌아간지 오래지 않아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의사는 부정적인 진단을 내린 모양이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왔지만 큰 병을 얻어 다시 돌아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노래가 더욱 가슴에 와 닿는지도 모른다. 아메리칸드림이 한 때 우리나라에 열풍으로 불었고, 코리안드림을 좆아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많이 몰려들어왔고 또 오고있다. 그들이 모두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녹녹치 않을 것이다.
웃음교실 다음 시간에도 클레멘타인을 개사한 노래를 다시 불러야겠다. “웃으면서 웃으면서 내게오라 그대여 소망으로 인도하는 큰웃음을 웃어봐.” “웃으면서 웃으면서 내게오라 그대여 사랑웃음 가득담아 당신에게 보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