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글귀 중 하나는 노자 도덕경(道德經)의 상선약수(上善若水)입니다. 간혹 이 글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 놓은 집을 볼 때면 잊었던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아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아마 집주인도 평소 물의 성품을 닮고 싶은 마음을 액자에 담아 걸어 놓았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시인님이 ‘물처럼 흘러야 아름답다’로 풀어 쓴 표현을 저는 더 좋아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도 중에 ‘낮은 데로 임하옵소서’라는 말도 물의 본성과 통하여 좋아합니다. 물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대상의 그릇에 맞춰 자기 몸을 담습니다. 그 마음씨를 닮고 배우고 싶습니다.
물은 마냥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갑니다. 자신의 몸을 낮추고 낮춰 낮은 곳으로 내리는 본성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물은 흘러내리며 뭇생명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고 다시 흘러 흘러 강을 이루고 마침내 넓은 바다에 다다릅니다. 바다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생물이 사는 공간이며 인류에게 무진장의 자원을 공급해주는 보고(寶庫)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 있을 때의 양수의 염분 농도가 바다 염분 농도와 똑같다고 합니다. 우리는 물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의 70%가 물로 이루어졌고 지구도 70%가 물로 덮혀 있습니다. 우주 만물의 신비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옛말이 생각납니다. <근취제신(近取諸身) 원취제물(遠取諸物), 우주 자연을 알고 싶으면 나를 보고, 나를 알고 싶으면 우주 자연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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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 마음은 함께하는 기쁨의 노래 |
저는 바다를 좋아해서 답답할 때 바다에 가면 속이 뻥 뚫리듯 시원하고 엄마 품에 안기듯 푸근합니다. 바다의 심성이 엄마의 심성과 같아 그런 느낌이 드나봅니다. 어떤 분이 “바다를 왜 바다라고 하느냐?”라는 우리 말 풀이를 “다 받아드린다고 해서 바다라 한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정말 멋진 해석이고 맞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해석은 바로 물의 본성과 같으니까요. 우리들 심성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물은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갑니다. 수증기는 구름이 되어 떠돌며 하늘에 멋진 그림 작품을 만들어 우리들의 감성을 풍요롭게 해주기도 합니다. 지상에서는 안개를 만들어 안개 낀 날, 길을 걸으면 구름속을 걷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낍니다.
가끔 산 정상에서 구름바다(雲海)를 볼 때면 탄성이 절로 나와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아니 순간적으로 자연과 내가 일체가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합니다. 어찌보면 우리 마음이 고향인 물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등산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아졌습니다.
또한 하늘의 구름은 추운 겨울 눈꽃으로 피어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어린 시절 펑펑 눈이 내리는 날은 방에 있다가도 눈을 맞으러 뛰어다닙니다. 집안의 강아지도 덩달아 좋아서 마냥 뛰어다닙니다. 발 시려운지도 모르고. 지금 생각해보면 귀한 손님인 우리 마음의 고향님을 맞이하러 가는지도 모릅니다.
눈을 현미경으로 보면 별 모양을 한 정말 예쁜 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생각해봅니다. 구름속 물방울이 맨몸으로 냉혹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비우고 비웠길래 속이 하나도 없는 눈부시게 흰 별꽃을 피웠을까?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이 생각을 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제 가슴속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온갖 아픔을 이겨낸 사람들만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어떤 과학자가 눈송이를 조사한 결과, 똑같이 생긴 눈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 하나가 전부 다르다고 합니다. 이것도 자연의 신비이고 조물주의 섭리입니다. 저는 또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눈이 내리고 나면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집니다. 설경이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하나 하나 다른 눈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서 이런 장엄한 눈꽃 세상을 이룬 것은 아닐까. 우리네 삶도 똑같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문예샘터도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인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분 한분 모두가 아름다운 꽃들입니다. 저는 문예샘터 회원들이 조화를 이루며 활동할 때 눈꽃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물은 돌고 돌면서 뭇 생명들의 목을 축이고 살립니다. 온갖 먼지와 때를 씻어 줍니다. 장소에 따라 분위기에 맞는 노래도 들려줍니다. 가끔 고향생각 나게 하는 구름과 아름다운 상상을 하게 하는 무지개 그림도 선물합니다. 곱디 고운 흰이불로 덮어 눈부신 세상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리적인 것 뿐만 아니라 감성을 풍부하게 하여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어떤 생색도 내지 않고 묵묵히 흐르고 변화해가면서….
저는 늘 가슴에 맑은 정한수를 떠놓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님의 심성을 닯게 해달라고. 오늘도 저는 그 기도를 조금씩 화폭에 옮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