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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열며
문예샘터 칼럼/김예태(문예샘터 자문위원)
  2013-01-24 17:36:08 입력

우리 집에서 전철역으로 가는 데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큰길을 건넌 뒤 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길을 꺾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큰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서 역으로 곧장 가는 방법이다.

전자는 번화하지만 돌아가야 하고, 후자는 가깝지만 가는 길이 지저분하여 행인이 뜸하다.

어느 날 나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가 길 한복판에 죽어있는 작은 쥐를 보았다. 갓 숨이 끊어졌는지 보송하게 털이 일어나 바람에 흔들리고, 자르르 윤기 흐르는 털 속으로 햇빛이 들락거리며 놀고 있었다. 나는 죽은 쥐 앞에서 흠칫했지만 그 뿐이었다.

일주일쯤 후에 무심히 그 골목길로 다시 접어들었다가 자동차 바퀴들에 의해 납작하게 눌린 쥐를 보았다. 양철조각처럼 잘강거리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쥐를 보고 잠깐 눈을 감았지만 또한 그 뿐이었다. 또 한 주일이 지났다.

나는 목요일마다 골목 중간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며 전철 밑 굴다리를 지나 어디론가 가야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그 길을 지났던 것이다. 종이처럼 납작해진 쥐의 몸체 중 일부가 부서져서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곳을 지나는 행인은 거무레한 흙가루가 쥐의 사체인 줄도 모르고 밟으며 갔고, 나는 그것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떠들지는 않았다.

다시 한 주일이 지났다. 그런데 그날은 골목길에 새로이 아스팔트가 깔려 있었다. 어제 저녁이나 오늘 아침에 공사를 끝냈는지 3~5㎝ 정도의 두께로 새카맣게 덮인 아스팔트는 반짝반짝 광채가 났다. 죽은 쥐도 길 밖으로 밀려났던 깨진 유리 조각들도 모두 묻혔다. 마을 사람들이 아스팔트 위를 환한 얼굴로 지나갔다.

새해가 왔다.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걸었다. 묵은 노트를 책꽂이에 꽂고 새 공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컴퓨터에도 2013년을 위한 새로운 폴더를 준비했다. 문득 골목길의 아스팔트가 떠올랐다. 아니 아스팔트 밑의 쥐가 떠올랐다는 말이 더 맞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히지 않는 쥐의 기억. 아스팔트로 덮지 않았다면 ‘목숨이란 다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말하며 바스라지는 쥐를 곧 잊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미처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도시의 아스팔트 밑에 부서진 형체로 화석이 되어있을 쥐는 그렇지가 못했다. 나는 왜 쥐 한 마리를 치워주는 일에 그리도 무심했을까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새해를 맞아 새 달력을 거는 일과 죽은 쥐를 덮어버린 검은 아스팔트의 골목길을 나란히 놓고 생각해본다. 혹시 새 달력을 거는 일이 풍장이 덜 된 쥐를 덮어버리듯 미처 정리되지 않은 임진년을 덮는 행위는 아닐까, 새해에 의탁하여 어영부영 지난해의 부끄러움을 하얗게 지워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12월31일 밤이면 많은 사람들이 보신각의 타종 소리를 만나기 위해 종각 앞으로 모여든다. 또 많은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자동차를 몰고 동해로 간다. 새해 새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해를 다짐하기 위해서다. 어제도 떴고 내일도 뜨는 해지만 시작의 설렘은 언제나 특별하기 때문에 그들과 동참하지 못하는 나는 TV 화면에 시선을 박고 송구영신하는 풋풋한 젊은이들에게 막연한 그리움을 보낸다.

아침에 일어나니 붕긋하게 쌓인 눈 위로 햇살이 눈부시다. 밤새도록 어제를 지워낸 하늘의 뜻을 헤아리며 새해를 실감한다.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싸늘한 한기를 뚫고 작살처럼 내려와 꽂히는 햇살. 금속성의 빛깔로 바늘처럼 반짝거리는 햇살. 누구에게나 내리비치는 올곧은 햇살. 그 햇살 앞에 프리즘을 들고 나서면 무지개가 뜨고, 오목렌즈를 들고 앉으면 눈앞에서 불꽃이 인다. 우리는 새해를 어떻게 열 것인가.

번화한 신작로를 선택하든 지저분한 뒷골목을 선택하든 그것은 모두 개개인의 몫이다. 다만 풍장이 덜 된 쥐의 사체를 아스팔트로 덮어버리는 아픈 과거는 임진년의 기억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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