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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 불러보는 어머님의 초롱불
문예샘터 칼럼/정영수(미래전략학 박사, 의정부시의회 제4대 부의장, 대한민국명장)
  2013-01-02 10:11:55 입력

6.25 바로 직후 초등학교 다니던 나는 초겨울이 깊어 해가 짧아지면 집으로 가는 도중에 어둠을 만나고, 그 어둠 속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맞닥뜨리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그래서 청소당번이나 주번이 되면 어둠 속을 달려야 하는 귀갓길이 걱정돼 불안에 잠기곤 했다.

내가 다닌 학교는 1학년이 되면 한글 익히기에 대비해서 보충수업을 했고, 정규시간을 끝내고 청소까지 마친 다음 한두 시간씩 더 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가혹한 형벌이었다. 수업 마지막 시간은 온통 뺑소니 궁리 때문에 선생님 말씀이 머릿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규수업이 끝나면 나는 줄곧 선생님 동정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가 이 때다 하는 순간, 쏜살같이 교실을 빠져나가 학교 뒷담을 넘어 도망쳤다.

어느 뺑소니치던 날, 학교 뒷담을 막 기어오르는데 덩치 큰 녀석 셋이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교무실로 붙잡혀 간 나는 선생님의 주먹세례를 받았지만 결코 승복할 수 없었다. 담임의 엄한 호통보다도 20리 밤길을 나 홀로 달리는 것이 더 무서웠던 것이다. 사정 얘기를 들은 선생님은 보충수업을 면제해주는 대신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청소당번과 주번은 피할 길이 없었다. 특히 나머지공부가 문제였다. 나는 그것마저 면제해 달라고 할 만큼 넉살 좋은 아이가 아니었다. 초겨울이 되면 정규수업 6시간만 마쳐도 해가 넘어가는데 청소와 주번까지 하는 날이면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해 짧은 겨울날, 청소주번으로서 마지막 점검을 끝내고 지도 선생님께 ‘차렷 경례’를 할 때쯤이면 학교 근처 민가에서는 저녁연기가 피어올랐다.

11월 어린 시절. 초겨울 깊어 해짧아지면 집까지 머나먼 20리 밤길 무서워 ‘공포의 산길’ 서낭당·여우·도깨비불·쌍무덤·부엉이 지나 소나무 숲 우거진 별똥별 꼬리 긋는 밤하늘 쳐다보니 아, 내 이름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 어머니! 60년 전, 일찍 끝나는 날은 앞집 완재, 옆집 종훈이와 함께 귀가하는 날도 이 길은 무서워 서로 손을 잡고 조용히 걷던 길이다. 장난기가 발동하며 친구 중 누구 하나를 뒤에 두고 고무신을 벗고 귀신 나온다고 외치며 달려가다 보면 그 중 한 친구는 집까지 울면서 뛰어오던 그 험한 시골산골의 길이다.

‘벌써 저녁이야’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나는 그 칙칙한 연기를 우울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러다가 기다리던 주번 지도 선생님의 해산명령이 떨어지면, 나는 책 보따리를 허리춤에 동여매고 단거리 경주하듯 숨 가쁘게 뛰었다. 가슴을 할딱이며 약 10여분을 달려 면 마장리를 빠져나가면 민가가 띄엄띄엄 있는 들판 한가운데를 관통하게 되고, 30분 뒤에는 적막한 골짜기로 진입했다.

이 때부터는 자전거도 타기 힘든 오솔길의 연속이고, 말이 길이지 논두렁 산길 밭두렁이 대부분이었다. 길은 먼데 날은 어두워지고, 여우가 출몰하고 귀화(鬼火)까지 번쩍이는 쌍무덤 앞을 지날 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이렇게 20분 가량 더 달리면 소도둑이 출몰한다는 중산리 재에 이르렀다.

기다리고 있던 부엉이가 울었다. 여기가 중간 지점이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미네르바)의 애완 신조(神鳥)로 알려진 부엉이는 그 때도 왠지 친구처럼 느껴졌다. 이 마(魔)의 고개를 넘어 약 10분 더 가면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조금 안도의 숨을 쉬게 됐다. 길가의 집 앞을 지날 때는 된장찌개 냄새가 물씬 풍기고,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다. 창호지를 통해 어스름히 새어 나오는 낯익은 불빛은 나를 반기는 듯했다. 개도 짖지 않았다. 내 발자국 소리가 귀에 익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10분 더 가면 또 민가 없는 골짜기 무당개울을 따라가야 했다. 다시 전신에 땀이 비 오듯 솟구쳤다. 다음 마을까지는 약 2㎞, 중간 지점 후미진 곳에 귀신이라도 나올 법한 서낭당이 있었다. 무서움을 피하려고 자그마한 돌을 성낭당에 던진다. 대낮에도 오싹한 곳이었다. 이곳을 지날 때는 사지(死地)를 탈출하듯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뒤에서 무엇인가 덤벼드는 느낌을 떨치기 위해서였다. 이제 우리 마을을 지척에 둔 속칭 ‘아랫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가가호호(家家戶戶)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 때였다. 더러는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 집도 있었다. 산짐승 들짐승도 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여기서부터 우리 집까지는 약 1㎞, 가파른 오르막길이고 중간에 또 서낭당과 저수지가 있었다. 움막집에 빨간 헝겊조각을 매단 새끼줄을 두른 그 서낭당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길섶 산비탈냇가 무당이 춤추던 곳이었다. 산새가 퍼덕이면 어른도 질겁하는 곳이었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가야 했다. 공포의 마지막 코스였다.

어느 날이던가, 그날은 너무 늦어 도무지 이 구간을 정복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랫마을 마지막 길목에 있는 어느 집 앞에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고, 나를 알아본 건지 별똥이 긴 꼬리를 그으며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것이 나의 불안과 공포를 달랠 수는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이름을 부르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니께서 초롱을 든 채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더듬더듬 내려오고 계셨다.

누가 그랬던가. 신(神)이 없는 곳에도 어머니는 있다고 했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어김없이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멀리서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행여 동네사람들이 들을까 목청을 죽이면서, 내 이름을 나직이 부르시곤 했다. 어머니와 걷는 밤길, 초롱이 꺼져 있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나에게 보내는 신호등이었던 것이다. 어머님은 이 세상에 안계시다. 저 세상에서 편안하게 계시기를 기원한다. 다시 한번 불러본다. 어머님의 기일을 맞아 그 이름 어머니, 아~아 어머니 당신이 그리습니다.(2012.11.3)

2013-01-03 10:10:43 수정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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