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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근무요원 체험수기)나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의정부시청 가족여성과 심성보
  2012-11-21 09:42:22 입력

무료 검정고시 학교 학습도우미를 하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서
“뭐해.”

친구들이 서로 하는 가장 흔한 질문인 이 질문에 참 대답하기 어려워지는 시기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난 대체 뭐 하고 있을까?’

 이것저것 일을 벌이며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공익생활 초기와는 달리, 6개월쯤 지나자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에너지도 의지도 고갈되어 버렸다. 그래 이런 게 매너리즘인가. 늘 똑같은 일상, 늘 보는 사람들, 친구들. 군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이곳에도 지루함은 존재했다. 아, 해줄 말이 없다. 그래도 질문에 대해서는 대꾸는 해줘야 하니, 귀찮다.

“뭐.”

“뭐냐?”

“‘뭐’하라며.”

그렇다. ‘뭐’이런 식이다. 한 두 번이지, 이렇게 계속 대답할 순 없다는 생각이 들 때쯤, 네이버 해피빈의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통해서 지금 봉사하게 된 야학을 알게 되었다. 이름은 ‘나무들을 위한 숲’, 이름이 좀 길긴 하지만 느낌은 괜찮다. 청소년 배움 학교(야학)뿐만 아니라 카페와 지역아동센터도 운영하는 상당히 많은 일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었다. 의정부시 행복소식지에 사회적 기업의 모범 사례로 소개 된 기사도 볼 수 있었다. 배울 환경이 안 되는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서 무료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취지가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신문기사도 날 정도면 사이비는 아닐 듯. 괜찮겠는데.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가정과학’ 과목이 가능하신가요?
“안녕하세요, 야학 선생님으로 혹시 수학과목 자리가 아직 남았는지요?”

공대생인 나는 당연히 수학선생님 자리가 편했고, 수학과외 및 조교 경험도 있기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수학 선생님은 이미 계시고, 혹시 ‘가정과학’과목이 가능하신가요?”

가정과학? 이건 대체 무슨 과학인가? 처음 들어보는 과목이름이다. ‘가정’이라는 말, 매우 불길하다.

“‘가정과학’과목에 대해서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쉽게 말해서 ‘기술가정’에 ‘가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아오, 복권은 못 맞춰도 이런 건 잘 맞추지. 알아야 가르치지. 나는 수학자리가 혹시 되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뭐’ 좀 해보려고 하면 꼭 이러네.”

그리고는 한 달 같은 일주일이 지났을까, 여전히 무료하다. 문득 생각이 바뀐다. 그래, 내가 꼭 수학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가르치는 강사가 아니라 봉사에 의미를 두자. 어쩜 이렇게 기특해 지는지. 어려워 봐야 얼마나 어렵겠어. 결국엔 다시 연락을 해서 이렇게 얘기하고 말았다.

“과목이 중요하겠습니까, 봉사하는 마음이 중요하지요, 해보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는 과목의 선생님이 되고 말았다.

이건 나도 모르겠으니까, 일단 넘어가자
드디어 나에게도 꽤 괜찮은‘뭐’가 생겼다. 첫 시간부터 수업을 하는 것은 매너가 아니기에, 여러 가지 그럴듯한 말들을 풀어 놓고는 다음부터 잘해보자며 간단히 마무리 했다. 공익이라는 신분적 배경도 그렇고, 첫 시간부터 수업은 안하고 목사님 설교 같은 소리만 하는 나에게 호기심들이 생겼는지 녀석들, 생각보다 꽤 듣는 태도가 좋았다.

첫 시간을 마친 후 학교를 실질적으로 관리하시는 교감 선생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던 아이들의‘문제’들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이 안계시고 집안형편이 어려워 할머니와 생활하는 아이, 20대 초반에 벌써 아이를 가져서 엄마가 된 아이, 주먹을 써서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 도벽이 심해 보호관찰을 받고 있는 아이, 등등. 짐작한 것과 실제로 들은 것은 또 다른 차이가 있다. 그렇구나, 내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새삼스럽지만 새롭게 다가온다.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든 경험들을 한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해야겠다. 스스로 이 학교를 찾아온 아이들이기 때문에 공부에 대한 열의는 있다고 교감선생님께서 말씀하시며, 잘해보자고 하신다. 그래 비록 내가 ‘가정과학’ 모르지만, 어려우면 얼마나 어렵겠어. 공부하면서 하면 되지 ‘뭐.’

그런데, 어렵다. 특히 의생활, 식생활부분은 외울 것도 많고 만만치 않다. 결국 바로 다음시간, 밑천이 드러났다. 준비하면서도 몰랐던 부분, 슬쩍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열심히 물어보는 녀석에게 딱 걸렸다. ‘뜨개질.’ 뜨개질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는 내가 ‘뜨개질’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미안하다, 이건 나도 모르겠으니까 일단 넘어가자.”

이렇게 나는 두 시간 만에 엉터리 선생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계속 엉터리로만 머물 순 없기에, 모르는‘뜨개질’과 더불어 자수에 대해서 꽤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어머님과 몇몇 여자인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덕분에 그 다음시간 부턴 어설프게 넘어가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선생으로 들어간 시기가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기에, 진도에 쫒기지 않는 선생이 되고 싶었으나 물리적으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수업만 한 것 치고는 나름대로 애들하고 친해지고, 재미있게 했다고 스스로 평가해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8월 초에 검정고시를 치는 것으로 이번 기수 학사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식. 끝난다는 것은 항상 여러 가지 감정을 만들어준다. 나도 무엇인가 했다는 성취감. 내가 한 일이 저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괜히 뿌듯해진다. 거기에, 중간에 투입된 이 어설픈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들은 ‘여자보다 꼼꼼히 가르쳐 주신 가정과학 선생님’은 정말 최고의 찬사였다. 기분 좋다.

졸업식 마지막에 아이들에게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얘기하려다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비록 엉터리 선생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선생이라고 수업을 하면서 꼭 강조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이것을 어떤 흐름에서 공부하고 있는지, 궁극적으로는 본인 스스로가 이 내용을 왜 공부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단다.’ 그런데 이 말, 누가 들었어야 하는 말인가. 남에게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했었다. 가정과학 공부의 동기 부여가 된 것이 아이들 때문인 것은 맞지만, 위의 질문에 감히 ‘너희들을 위해서’내가 공부를 했다고 말 할 자격이 있는가?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꼭 내가 하지 않았어도 된다. 중요한 것은, ‘너희들 덕분에’ 뜨개질과 자수를 공부했다는 사실이었다. 부끄럽다. 잘 몰랐다, 너희들을 위해서 내가 무엇인가 가르치려고만 했던,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나의 오만함을. 너희가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이것에 관심을 가져봤을까. 코바늘과 대바늘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내가 뜨개질을 설명하고 있는 것, 참 우스운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꽤나 열심히 듣고 있던 너희들, 참 대단한 녀석들이다. 그래, 한마디만 하자.
“나에게 뜨개질을 가르쳐줘서 정말로 고마워.”

‘뭐’를 고민하고 있나요?
수학선생님이 바로 되었다면 어땠을까. 과목 내용으로는 막힘없이 잘 설명할 자신도 있었고 경험도 이전에 많았기에 어설프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정과학’은 나를 겸손하게 했다. 칠판 위에 섰다고 잘난 사람이 아님을, 이렇게 또 배운다. 덤으로, 나의 활동으로 인해 공부환경이 어려워 학교를 나올 수밖에 없던 이들에게 사회로 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 이것으로 인해 내가 느끼는 뿌듯함은 얹어진 선물쯤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 같다. 이런 귀중한 기회, 내가 공익이 아니었다면 할 수 있었을까?

공익근무 자체를 열심히 하는 것은 말할 필요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혹시나 주어진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 현재 내가‘뭐’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 또는 나와 같이‘뭐’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모해져 보자.

지금 이 순간, ‘뭐’를 고민하고 있나요? ‘뭐’를 망설이나요?

우리 주변, 너무나 가까운 곳에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뭔’가가 널려져 있음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더라도 혹시 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정과학’이 그 예가 되길! 반대로, 내가 저들보다 잘나서 봉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가정과학’이 역시 예가 되길!  나는 공익근무요원 모두에게 이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여서‘뭔’가 열심히 하고 있는 공익이 있다면, 사람들도 생각하지 않을까.

“공익 괜찮네.” 물론,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몇 배는 중요하겠지만.

다시, “뭐해?”

2012-11-21 09:50:20 수정 경기북부시민신문(hotnews2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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