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왜 독도를 수탈하려 그렇게 도발적 망언을 하나. 독도에 대해 일본은 논할 가치가 없다. 한국 땅 독도 오천 년 역사적 지배를 왜곡하는가. 침략의 야욕만 국제적으로 드러내 비난 받음으로써 일본은 이익이 없다는 진단이다. 1905년 1월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위한 결전장으로 유리했기 때문에 그해 2월 일방적으로 자기네 땅으로 편입하고 공표한 침략 근성인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대사관 앞 편도 4차로 중 2개 차로를 점거한 채 “이명박 대통령은 천황(일왕)에게 사과하라” “미나미 조센진(南朝鮮人·한국인을 경멸적으로 부르는 말)은 일본에서 나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대사관에 항의문 전달을 시도하기도 했다. 일본이 보여주는 잔악한 무리들의 악쟁들이 망하려는 수순이다.
을사조약(乙巳條約)은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 정부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제국 정부의 주한공사 하야시 곤스케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체결 당시 정식 명칭은 ‘한일 협상조약’이며, 을사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을사늑약, 을사오조약, 을사보호조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일본은 제2차 한일협약(韓日協約)이라고 부르며, 한국에서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맺은 조약이라 해서 을사늑약(乙巳勒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45년 5월4일 오키나와 근해에서 가미카제 공격을 하다 사망한 아이하나 노부오는 최후의 출격을 앞두고 가족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어머니 저를 용서하세요. 어머니! 이제 가미카제 특공대로 떠나는 순간이지만, 보통 사람들은 50살에 죽으니 저는 아직 30년 더 살 수도 있겠지요. 어머니, 그 30년을 당신들께 드립니다. 어머니, 이 봉투 안에 함께 넣은 돈으로 좋아하는 담배 사서 드세요. 어머니, 저는 갑니다. 저 노부오는.” 이 편지를 쓸 당시 노부오는 18세였다. 꽃다운 나이의 이 청년을 어이없는 죽음으로 몰아간 것은 일본 제국주의자다.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7월, 미국 함대가 사이판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이 섬이 미군 수중에 넘어가면 미군 폭격기가 일본 본토를 직접 폭격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일본의 몇몇 파일럿들이 자살 공격을 감행했고, 이후 오니시 다키지로 중장이 가미카제 공격을 일본군의 전략으로 체계화했다. 그렇지만 비행기를 몰고 미군 함선에 돌진하는 자살 특공대는 미군이 방공 능력을 강화하자 거의 대부분 무의미한 죽음으로 끝나곤 했다.
일제가 항복한 다음 날인 8월16일, ‘가미카제의 아버지’ 오니시 다키지로는 아이하나 노부오처럼 그가 죽음으로 내몰았던 4000명의 젊은 파일럿에게 사죄하고, 살아남은 청년들에게 일본의 재건과 국제평화를 당부한 후 할복 자살했다. 2000만명이 죽으면 제국을 지킬 수 있다고 단언했던 그였다. 그는 죽는 사람의 목을 칼로 쳐주는 가이샤쿠닌(介錯人) 없이 할복하여 15시간 동안 극도의 고통을 겪다가 죽었다. 이것이 일본의 비극이다.
기꺼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자는 남의 목숨도 기꺼이 바치는 자라고 했던가. 일본 제국주의는 이웃 국가의 국민만이 아니라 자국 국민부터 희생을 강요한 죽음의 체제였다. 그 체제가 패망한 것은 일본 국민에게도 해방을 의미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은 갈수록 그 해방의 의미를 망각하고 왜곡하는 것 같다. 패망일을 기념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일본 뿐이다.
예의를 모르는 나라, 자기 것도 남의 것도 모두 자기 것이라고 행하는 못된 속성을 우리는 다시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위안부(성노예) 등 인륜에 반하는 행위로 패망한 지 100년이 지나도 용서를 모르는 나라, 도덕과 윤리가 없는 나라, 그것이 지금의 일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