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효경 |
대련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나는 남편이 장기 출장 중인 대련으로 혼자 갔다. 입국 절차는 출국 절차보다 까다로웠다. 남편은 나를 겨우 호텔에 내려놓고 바쁘게 회사로 가버렸다. 나는 호텔에 갇혀 첫날을 보냈다.
이튿날 출근하는 남편은 나를 호텔에서 가까운 백화점 앞에 내려놓고 점심시간에 만나자 했다. ‘아이처럼 길 잃지 말구.’ 남편은 급하게 내 손바닥을 펼쳐 회사 전화번호를 적었다.
나는 백화점 옆에 있는 시장으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백화점 건물 그늘 속에 대련시장은 있었다. 대련시장은 내 낡은 기억 속 시장이었다. 사람 많은 시장에서 엄마 손을 놓치고 길을 잃었던 유년시절이 거기 있었다. 엄마가 사라진 시장은 소리가 멈춘 세계였다. 대련시장을 떠다니는 모르는 언어는 소리가 되지 않았다. 소란한 시장은 오히려 적막했다. 거기에서 나는 엄마 손을 놓친 그 아이가 되었다.
대련시장을 빠져 나오니 거짓말처럼 바다가 나타났다. 바다를 배경으로 마차가 있었다. 바다에 떠 있는 마차라니, 서울 놀이공원에 있던 마차와 다르지 않았다.
말에게 물을 먹이던 마부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봤다. 중국어를 모르는 나는 마부 손바닥에 ‘해변(海邊) 행(行)’이라고 썼다. 마부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차를 몰았다. 바다는 마차 앞에 옛날부터 엎드려 있었다. ‘따각따각’ 말 발굽 소리는 타임머신이 되어 기억할 수 없는 과거로 나를 데리고 갔다. 마부는 가끔 뒤돌아보고 하얗게 웃었다. 나는 남편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고 같이 웃었다.
백화점 앞에서 기다리던 남편 신발 끝에 담배 꽁초가 수북했다.
다음 날도 어제처럼 남편과 백화점 앞에서 헤어졌다. ‘이 안에 꼭 있어 멀리 가지 말구.’
남편이 적어준 전화번호는 어제 지워지고 없었다. 나는 시장을 벗어나 바다로 뛰어 갔다. 말처럼 속눈썹이 기다란 마부가 어제와 같이 하얗게 오래도록 웃었다. 마부는 사납게 흩어진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기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마부는 말에게 물을 자꾸 먹였다. 나를 마차에 태우고 마부는 바다를 벗어나 자동차 가득한 시내로 들어갔다. 시내에 갑자기 나타난 마차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혼잡한 도로에서 마부는 말과 마차를 분리했다.
마부는 마차 안에 있던 나를 건져올려 말등에 태우고 마차를 버렸다. 말등에 오르니 시내 밖에 누워있는 바다가 보였다.
백화점 그늘에서 서성이는 남편은 난쟁이처럼 작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