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컴퓨터에서 김희갑 작곡가님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인드라스님의 간드러지는 ‘정주고 내가 우네’라는 노래와 연주를 보는 순간, 바라보는 눈빛 사랑스런 예술인의 깊이와 가치관은 안개 속에서 무엇인가 찾은듯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모자를 벗으니 맑고 청아한 음성을 내뿜던 우유빛 피부 스님 얼굴의 미소는 깊고 당당한 가치관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예술인이 선택한 것은 바로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를 그대로 지니고 있는 그것이었다. 즉, 스님의 본분을 떠나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고 가치 있다고 믿는 것에 대한 사랑의 관점, 그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대하여 인품도 사랑도 삶의 비전도 달라지는 것이다.
오늘 현대의 비극은 가치관의 혼돈에 빠지는 것이고 가치관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치관을 인간적인 깊이로 추상적이고 평면적인 일반으로만 파악하려 하는데 그것은 잘못이다. 인간 깊이에 대한 소외라고 볼 수 있다. 인간 소외는 자기 소외다.
인간은 평면적이 동물이 아니라 입체적인 동물이다. 인간에게서 입체적인 것이 말살될 때 인간은 단순한 동물로 전락되고 인간에게는 인간다운 물음이 끊어지고 만다. 사람들이 인간이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인간의 평면성을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깊이를 묻는 것이다.
현대는 인간의 깊이에 무관심한 시대다. 즉, 인간의 깊이를 상실한 때다. 자기 상실이라고 표현하거나 근본이 상실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환경에 적응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은 환경 변화에서 또 다른 변화로 가치관이 바뀔 수 있다. 기술에서 소외되고 정치에서 소외되고 경제에서 소외되고 문화에서 소외되고 사랑까지 소외되고 인간성마저 잃는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중요하다. 인간성의 깨달음이요 마음의 열림을 경험하는 것이다. 열린 마음에 인간은 깊이가 있다. 이 깊이를 채우는 것이 사랑이요 가치관이다. 이 깊이는 마음의 열림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일단 자기 가치관을 만들며 거기에서 힘을 얻어 여유 있는 태도를 가지고 세상의 어려움을 풀어주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선에 미치고 악을 풀 수 있기 바란다. 가치관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요 같이 생각하면서 가치관 방법을 배울 뿐이다. 가치관은 최고의 덕으로 보람 있는 삶이다.
세상에는 제일 어려운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또 하나는 선생을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인생에서 선생 한 분을 만날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여자가 남자 하나를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자연적으로 거의 해결된다. 그러나 선생을 만나는 것은 자연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 많은 선생이 다 내 선생이 아니다. 나의 깊은 가치관 선생이 내 선생이다.
사람은 언제나 올바른 가치관으로 기쁘고 즐겁고 쉽게 살아야 한다. 온라인에서 본 스님의 투명한 노래와 몸짓. 바로 스님의 가치관에서 선생을 찾은듯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