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적막에 대하여
잦은 바람속의 감나무 이파리
초록의 혈관 팽팽한가 싶었는데
빠르게 겨울이 찾아왔다
텅 비어버린 맨 몸의 풍경 속에
삶의 한 부분을 도난당한 황국과 홍국이 있던 자리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매서운 날
나와 세상 사이에 적막을 끼워놓고 잠으로 잠겼는데
풍경은 아득하고 소리는 가깝다
소리와 소리 사이로 자그락거리며 걸어오는 침묵
그러나 모를 일이다
새로 반죽된 침묵의 두려움이 낯설지 않다
두려움은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보다 민감하여
바들거리거나 건들거리는 반죽을 두들기고 치댈수록
거미줄 같은 적막이 한 줄 한 줄 흘러나오는
적막의 우듬지에
자리 하나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밥처럼 간식처럼 의자 하나 베개 하나 옆에 놓고
침묵을 건너온 두려움에 대해 점검하기에 딱 좋은 방이다
해가 걸어간 자리 달빛이 차지하고 있는 지금
찰랑한 허공의 두려움을 껴안고
나의 눈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누가 이 적막을 흩트릴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