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한 오랜 논란 중 하나가 예술이 그 자체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아니면 인간에게 평가될 때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예술은 분명 미적(美的)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활동이다. 그러나 예술은 개성적인 창작을 통하여 보편적인 표현을 하고자 하는 기술이자 지적(知的) 활동임이 분명하다.
예술가는 보편적인 것을 직관(直觀)하여 그것을 종이·그림물감·돌·소리·기호 따위 물질적 재료를 통해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을 보아주고 평가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존재 가치를 지니지 못하고 사실상 의미를 상실하고 만다. 예술작품으로부터 감상자가 향유하는 것은 단순히 관능적 쾌감에서 그치는 수동적인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작품을 통해서 미(美)를 창조(創造)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적인 창조성 가운데도 보편성이 나타난 예술작품이 높이 평가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까닭이다.
예술은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다. 예술은 삼라만상에게 매혹적이고 절대적인 부분일 수 있다. 미(美)라는 것은 삼라만상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아름다운 교향곡을 듣고 자란 식물이나 동물들은 훨씬 잘 자라고 육질이 더 부드러운 특징을 지닌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아울러 미술치료, 음악치료, 독서치료 등 문화예술 활동이 인간의 소외와 아픔을 해결하는 상황에 와 있다. 이런 사실은 여러 실험결과를 통해 밝혀졌고 객관적으로도 설득력 있는 현상으로 공인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예술은 결국 인간이 의미 짓고 평가하고 가치를 부여했을 때 제대로의 진가가 발휘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까닭에 예술은 반드시 소통을 전제로 해야 한다. 소통하지 않는 예술은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고 만다. 물론 예술이 개인의 주관에서 출발하는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예술은 단지 개인의 주관적인 놀이만은 아니다. 혼자서 작업하고 그것을 즐기는 것에 머문다면 그것은 에술작업이 아니라 권태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개인의 감각적인 놀이에 불과하다.
예술은 그래서 소통하는 놀이라고 말하고 싶다. 작가는 작품을 전시하고, 연주하며, 노래하고, 몸짓으로 표현해야 한다. 예술작품의 전시활동과 발표활동이 활발할수록 그만큼 예술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이 커진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회 구성원이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다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 현장이나 사회교육기관에서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을 통하여 그 관심을 증폭시켜야 한다.
어쨌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틀림없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적으로 명성을 드높인 예술가들을 제법 배출한 국가라 할 수 있다. 요즘 K-POP은 물론이고 각 문화예술분야에서 한류의 열풍은 대단하다.
그런데 정작 우리 국내의 문화예술 현실은 어떠한가. 제대로 예술을 공유하고 향유하는 환경이 되어 있는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적 수준의 예술가들은 개인적인 능력과 자질도 뛰어나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예술에 대한 소통을 통한 공감대 형성과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아낌없는 지원과 관심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술은 소통이다. 진정 나눔의 공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