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녹차에서 진한 문화의 향과 인생의 삶을 음미한다. 녹차는 대개 3~4차례 우려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좋은 차인 경우, 야생차로 아홉번 덖어서 만든 차는 열번까지 우려 마신다. 차를 즐겨 마시는 소설가 한승원 선생님은 열번 우린 차향과 차맛을 다음과 같이 시로 남겼다.
‘삶의 구경, 그 자체인 향과 맛/나는 좋은 차인 경우 열번까지 우려 마신다./첫번째 우린 것은 배린내가 나는 십대 인생의 맛이고/두번째 우린 것은 혈기방장한 이십대 맛이다./세번째 것은 삶의 맛을 바야흐로 알기 시작하는 삼십대 맛이고/네번째 것은 깨달음이 보일둥 말둥하는 사십대의 맛/
다섯번째 것은 부처님이 눈을 반쯤 감은 뜻을 알기 시작하는 오십대의 맛/여섯번째 것은 연꽃잎을 스치는 부처님 눈빛을 보기 시작하는 육십대의 맛/일곱번째 것은 연꽃들이 다 지고 없는 연못의 황달 든 연잎에 어린 불음(佛音)을 듣는 칠십대 맛이다./여덟번째 것은 ‘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니라’ 하고 말씀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팔십대 맛/아홉번째 것은 햇볕에 잘 바래진 모시같이 머릿속이 바래지는 구십대 맛이고/열번째 것은 사바세상과 아미타 세상을 넘나드는 맛이다.’
이렇게 한승원 선생님은 차의 향과 맛을 인생의 삶에 비유해서 표현했고, 수필가 리산 선생님도 차와 우리의 삶을 나이별로 연관지어 표현했다.
‘첫번째 우린 차는 갓난아기의 단내 같은 차향과 초원의 풀향이 10대의 싱그러운 맛이요/두번째 우린 차는 색·향·맛이 절정을 이루는 것이 첫사랑을 경험하고 혈기왕성한 20대의 맛이나 어딘지 2% 부족한 듯하다./세번째 우린 차는 완숙한 야생의 맛이 풍기는 30대의 맛으로 학문의 기초가 확립되고 인생의 안정기가 시작되는 이립(而立)의 30대 맛이다./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의 40대를 떠올리며 우린 네번째 차는 골 지어 자란 다원의 풀 향기처럼 달고 떫은 맛이 균형을 이룬다. 40대의 안정과 균형처럼./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지천명(知天命)에 자연을 느끼는 50대를 생각하며 우린 다섯번째 차는 가슴으로 음미한다. 여전히 맑고 연한 노랑연두색에서 여인의 미소를 보며 부드러운 차맛에서 하늘을 느낀다./객관적인 이치를 알게 되는 이순(耳順)에 모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60대의 삶을 떠올리며 여섯번째 우린 차에서는 찻잎에 맺힌 맑은 이슬에서 하늘의 뜻을 알게 되고 존재의 행복을 느낀다. 회갑에 인생을 되돌아보듯 차의 색·향·미를 되돌아보니 아직도 충분히 차의 가치가 느껴진다./종심(從心)의 나이 70대의 삶을 떠올리며 일곱번째 우린 차에서는 차잎에 반사되는 연녹색 아침 햇살을 음미한다. 따스함 속에 떫은맛이 다시 살아나면서 삶을 되새김하듯 입안에 회감이 돌기 시작한다./
기쁨의 희수 77세를 넘기고 생명의 존재를 감사하는 산수(傘壽) 80대의 삶을 떠올리며 여덟번째 우린 차에서는 한 잎 한 잎 정성스레 새순을 따는 여인의 향기가 느껴지며 차 순의 풋내가 잔잔하다./88세 미수를 넘기고 무념무상의 졸수(卒壽) 90대의 삶을 떠올리며 아홉번째 우린 차에서는 수확의 기쁨에 넘치는 여인들의 미소를 꿈처럼 음미한다. 녹차색은 아직도 맑고 정겹다./세상이 하얗게 보이는 99세 백수(白壽)에 획 하나를 더 얹어 100세 시대의 삶을 떠올리며 열번째 우린 차에서는 노랑연두색이 짧은 미소로 남는다. 녹차의 향과 맛은 거의 사라지고 아쉬운 녹차향 속에서 새로운 차문화를 생각한다. 차는 풍류를 넘어 선이 된다. 다선일미인 것이다.’
이렇게 열번 정도 우려 마시는 사이에 대부분의 고뇌는 사라지고 무엇인가 정리되는 듯한 길이 보이며 명상에 빠진다. 다선일미의 경지를 느끼는 듯하다. 차를 마시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고, 정신이 맑아지고, 건강해지고, 풍류를 느끼며 깊은 경지에 이르는 신선이 된듯하다는 의미를 알 것 같다. 차문화 속에 함께 하는 도자문화, 복식문화, 음식문화, 건축문화, 공예문화, 예술문화 등등 여러 생활문화를 접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차인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쌀쌀한 날씨에 따끈한 차 한잔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