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송이버섯과 알금뱅이 부부가 함께 전철이나 음식점 등을 들어설 때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한꺼번에 쏠리곤 했다. 남들이야 어떻게 보든간에 송이버섯은 나이 50이 넘어서야 얻은 두 아이를 낳아준 마누라를 하늘처럼 떠받들어 모셨다.
오목눈이에다 자신의 머리통이 송이버섯을 너무도 꼭 빼어닮아 학창시절에는 여학생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될만큼 천덕꾸러기였다. 그래도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장사 수완 하나는 좋아서 일찌감치 돈을 벌어 또래 친구들은 집 한칸 장만 못하고 허리가 부러져라 일할 즈음에 강남에 그럴듯한 2층짜리 단독주택 한 채를 장만했었다.
나날이 사업이 번창해서 강남에 10층짜리 빌딩 한 채와 경기도 이천에 2만여평 땅도 사놓고 1980년대에 보통사람들이 꿈도 못꿀 외제 승용차까지 타고 다니며 참 잘나갔었다. 그랬던 송이버섯이 무슨 다단계 사업에 손을 대고나서부터 휘우뚱 거리기 시작하더니 2003년 8월엔가 쫄딱 망해갖고 보증금 3억에 월세 150만원짜리 사글세 집에 살만큼 형편이 칵 쪼그라 들었었다. 송이버섯은 김가다가 이태원에 살고 있을 때 우연히 알게 된 친구였는데 동네 도라무통 대포집에서 술이 취해 주인의 멱살을 쥐고 행패를 부리는 것을 김가다가 말려서 그 뒤부터 호형호제 해온 사이였다.
사람이 앞뒤 분별을 잘 모르고 말을 무식하게 내 뱉아서 사람들이 곁을 주지 않았지만 원래 심성은 벙어리 삼룡이처럼 순박한데가 있어 김가다는 그를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 하여간에 80년대에 사업이 폭삭 망했지만 무엇이건 가리지 않고 대들어 해볼려는 열정만큼은 본받을만 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한 뒤로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일을 벌였지만 여의치 못하자 건설업을 하는 친구의 배려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아주머니 두어명을 데리고 밥장사를 시작했는데 거기에서부터 또 슬슬 기반을 잡기 시작하더니 옛날처럼은 턱도 안되었지만 그래도 강남에서 조그마한 집 한 채 장만하고 사는 형편은 되었었다. 하지만 그는 식당에서 일하던 아주머니를 어느날 밤 술에 취해서 마구잡이로 깔아뭉개다가 마침 현장을 찾아온 그 아주머니의 남편에게 들켜서 코뼈가 묵사발이 되도록 줘 터지고 합의금을 1억씩이나 주고는 밥장사도 때려치고 말았다. 하여튼 그런 식으로 살아오는 송이버섯이었다.
“그래, 늦둥이 아들을 둘씩이나 얻었으니 사는 재미가 쏠쏠한 모양이지?”
“형님, 헌데 이 나이 되갖고 강남에서 내 집 한칸 쓰고 살긴 다 틀려버렸소. 대체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정책하나 제대로 못추스르고 나처럼 가난뱅이가 내 집 한칸 쓰고 살 희망마져 싹뚝 잘라버렸으니...아이고, 전세 4억에 사는데 집주인이 1억을 더 올려 달래잖아.”
송이버섯이 또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어쉬며 말했다.
“에휴! 가난이 죄지 뭐. 이놈에 정부는 정직하게 일해서 열심히 사는 백성들은 집 한칸 장만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식이고 있는 놈덜만 한없이 잘먹고 잘살게 만들었다니깐!”
“아니 전세 5억에 사는 게 가난한거냐? 이 사람아 5억 갖고 양주땅에 오면 33평짜리 아파트 4채는 마련하겠구만. 양주땅으로 이사오지 그래. 이젠 전철도 들어왔고 사통팔달로 길도 마구 뚫릴텐데 말야. 서울까지 한시간대야 이젠.”
그래도 송이버섯은 김가다의 말은 아랑곳 않고 게거품을 물고 대들었다.
“내가 미쳤수? 강남에서 이 똥냄새 나는 촌구석으로 와 살게? 형님, 전국 어딜가나 한번 알아보슈. 강남에 사는 사람이랑 양주에 사는 사람이랑 대우가 어떻게 틀린지. 차암네 형님두 딱허우”
“...애그 대가리에 똥만 가득찬 놈, 우째 그렇게 사냐 그래? 딱두허다아! 쯔쯔쯔...”
연거푸 소줏잔을 털어넣고 있는 송이버섯의 등뒤로 첫눈이 함박꽃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