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아침 창 밖에는 작달비가 노드리듯 쏟아지고 있었다. 김가다는 조간신문을 펼쳐들다 말고 문득 자신이 쓴 소설속의 주인공이 생각나서 훅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는 읽던 신문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베란다로 나갔다. 비는 마치 양동이로 퍼붓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는 마무리 작업 중인 10권짜리 장편대하소설(태양을 삼킨 남자)의 주인공 얼굴이 조금 전 석탄가루를 새까맣게 뒤집어 쓴 채로 막장을 맛 벗어나온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얼굴위에 더블 익스플러져 되어 깊은 감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소설 대미에서 주인공은 모든 국민들이 숨죽이고 바라보는 대통령 취임식에서 터지고 갈라진 손가락의 상처를 반창고로 돌돌 싸맨 채로 성경책 위에 한손을 얹어놓고 선서문을 낭독하기 앞서 잠깐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TV로 시청하고 있던 모든 국민의 눈자위가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대통령에 당선된 일주일 만에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로 수행원 몇 명과 함께 부라사랴 달려가 머리만 간신히 내어 놓은 채로 흙더미에 묻혀 죽어가는 한 농부를 구출해 내기 위해 손가락이 터지고 갈라지는 줄도 모르고 칠흙처럼 캄캄한 빗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었다. 비탈진 곳이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캄캄한 밤이라서 포크레인이 움직이기도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손과 삽으로 흙을 퍼낼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밤을 꼬박 새우는 사투 끝에 그 농부를 흙더미 속에서 건져 내었을 때 농부가 대통령의 목을 끌어안고 흐느끼며 한 말이 김가다의 가슴을 치고 있었다.
“비록 대통령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우리의 기대에 못미친다해도 보잘 것 없는 작은 촌부 한 사람을 구해내려고 그토록 최선을 다해주신 그 열정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김가다는 요즘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바다이야기를 바라보며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한줄기 비웃음처럼 피어오름을 느꼈다. 처음 바다이야기 광고판이 우후죽순처럼 나 붙었을 때 김가다는 뇌물과 로비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반식재상 놈들의 짓 인줄은 까맣게 모르고 그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었다.
“웬 해물탕집이 저렇게 많이 생기지?”
요즘 정치일선에서 내노라고 호가호위하며 큰소리 탕탕 치고 있는 사람들은 손학규씨를 향해 정치적인 쇼를 부린다고 비웃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은 손학규 전 지사를 꼭 그렇게 졸망스런 가시눈으로 보는 것만 같지는 않다는 느낌이었다.
“그래, 쇼라도 좋다. 쇼라도 좋으니 정치꾼들아, 한결같이 부앙무괴한 영혼으로 모두들 팔 걷어붙이고 지하 수백미터까지 내려가 새까만 석탄가루를 흠뻑 뒤집어 쓴 채로 광부들과 함께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캐는 손학규씨같은 모습 너도나도 좀 보여다우. 허구헌날 책상머리에 앉아 졸책만 쥐어짜느라 더운날 에어컨 춥도록 돌리고 추운날 런닝바람으로 온풍기 휭휭 틀어놓고 앉아서 말만 갖고야 하룻밤에 구중궁궐을 못 짓겠냐. 3천궁녀랑 줄X을 못하겠느냐.”
김가다는 그 때 침대에서 눈을 비비고 나오는 마누라가 첫 마디로 떨어뜨린 소리에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아빠, 배고파”
김가다는 우유에 인삼을 반뿌리 뚝 잘라 믹서기에 간 뒤 꿀을 두 숟갈 타서 마누라에게 갖다주며 뻥시레 웃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