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을 하고, 같은 언어를 쓰더라도 사람에 따라 무게가 다르다. 그 사람의 인생과 삶의 철학,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같은 말이라도 의미는 180도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코미디요, 또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혁명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말은 신중해야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을 수 있고, 칭찬으로 고래도 춤추게 할 수 있지만 그 어떤 무기보다 강한 상처를 줄 수 있는 게 말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권에 과학벨트를 조성키로 한 대선 공약을 백지화시켜 ‘제2의 세종시 사태’가 벌어질 조짐이다. 대통령의 말은 헌법처럼 무게가 무겁고 쉽사리 거둬들일 수 없기에 신뢰의 근간을 뒤흔드는 충격파를 던지고 있다. 앞에서는 공정사회를 강조하면서 뒤에서는 불공정사회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집주인이 도둑 잡을 마음이 없는데 경찰이 백날 도둑을 지키면 뭐하나. 일부 농가의 도덕적 해이가 문제되고 있다”며 구제역 확산 책임을 축산농가에 전가해 파문을 일으켰다.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베트남에 다녀온 농장주가 구제역 진원지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가 호된 뭇매를 맞았다. 이 나라 윗분들의 코미디 같은 말이 시민들에게는 절망 그 자체여서 말이 말로 끝나지 않는다.
현삼식 양주시장도 시민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다. 그는 구제역 대책회의 때 “대부분 축산농가의 방역대책 부족으로 많은 피해를 입게 되었다. 안일한 대처는 큰 피해가 발생하니 공동방제도 중요하지만 농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말해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담당자들은 축산농가를 탓하는 말이 아니라 농가 자체 방역시스템 구축을 강조한 말이라고 설명한다.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넘어갈 수 있다 치자.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무상급식에 대해 “다른 시·군이 한다고 해서 옳지 않은 것을 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공짜라는 것은 도덕적 해이만 불러올 뿐”이라고 말했다. 무상급식은 “돈 있는 사람도 공짜로 급식을 주자는 개념”이어서 도덕적 해이를 불러온다? 이 말은 ‘경기북부에서 유일하게 전면 무상급식을 역행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답변이었다.
양주시는 지난해부터 읍면지역 전체 초등학교와 동지역 5~6학년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양주시는 올해 읍면지역과 동지역 3~6학년 중 ‘돈 있는 학부모’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겠다는 말이 된다.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고 따뜻하게 먹을 한끼 밥이 느닺없이 도덕으로 둔갑된 것이다.
공정사회니 도덕이니 하는 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고,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명쾌한 잣대가 있어야 한다. 그는 과거 천문학적인 옥정지구 보상투기사건 연루에 대해 “도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벌어지는 측근들의 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한 입장은 오리무중이다. 그런 면에서 무상급식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그의 말은 한편의 코미디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