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가다는 전철에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선반 위에 조심스레 얹어놓고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펼쳐들었다. 신문에도 온통 장맛비로 방방곡곡에서 수해를 입은 현장사진으로 전국이 온통 폭격을 맞은 형상이었다. 옆에 앉은 중년의 신사 한사람이 김가다가 펼쳐든 신문을 들여다보느라고 고개를 잔뜩 디밀고 있었다. 김가다가 몹시 잔미운 나머지 속으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신문 한장 사 볼 돈도 없나아. 남 신경 쓰이게 스리 젠장 아흐! 아침부터 돼지갈비에다 쏘주 한잔 한 모양인데 마늘 양념냄새에다 술 냄새에다...젠장, 용고뚜린가 니꼬친 냄새는 아으!”
그가 김가다의 귓가에 바짝 입술을 들이대고 들으라는듯 말했다.
“대가리에 털이 죄 빠져갖고 명색이 그래 이 나라 교육을 책임진다는 사람이 감투욕심은 여전해서 남의 논문을 베껴써먹구 서두 뻔뻔하게 뭐 어째? 물러날 생각없다구?”
“......”
그런데 이번엔 김가다의 오른쪽에 앉아있던 중씰해뵈는 안장코의 남자가 역시 김가다가 펼쳐든 신문을 들여다보고 코웃음을 탕 쳤다.
“헝! 그 자리가 어떤 자린데 함부로 내놔? 미쳤어? 남의 입장 생각도 않구 함부러 말하면 안되는거여, 그 자리가 어떻게 올라선 자린데 그깐 논문 표절 정도 갖구 총리자릴 내놔.”
왼쪽에 앉아 있던 남자가 첫대바기로 그 사람의 말을 곧바로 받아쳤다.
“이 양반아, 왜 이 아침부터 남의 말에 끼어들고 있어? 엉? 사람 뭘루 보는거여 엉?”
오른쪽에 앉은 남자가 모들눈을 하얗게 번뜩이며 언성을 확 높였다.
“이거 왜 아침부터 반말 찍찍 내뱉구 지랄이여 지랄이!”
“뭐어? 지랄? 이거 진짜 아침부터 김 팍 새게 나오구 있어 증말. 반말은 당신이 먼저 했잖어! 왜 남의 말에 콩이야 팥이야 끼어들어? 당신 그 작자헌테 뭐 새우젓 꽁댕이라두 얻어먹었어?”
“뭐 작자? 일국의 교육부총리한테 작자? 이런 무식한 놈이 다 있어? 어따대구 이 작자 저 작자 하는거얏!”
“뭐가 어째? 오호라! 네놈 대가리에두 털이 고비사막인걸 보니깡 그 작자랑 뭐 사돈의 팔촌쯤 되는 모양이구나! 대가리에 비료 좀 뿌리지 그게 뭐냐?”
이렇게 되자 가운데 앉아 있는 김가다의 입장이 여간 거북하지가 않았다.
김가다가 벌떡 일어나 다른 칸으로 성큼성큼 건너가서 자리를 옮겨 앉아 눈을 딱 감았다. 그가 눈을 번쩍 떴을 때 전철은 이미 동대문을 출발하고 있었다. 순간 김가다는 앗!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하늘이 노랗게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마누라의 절망하는 눈빛이 김가다의 영혼을 하얗게 질리게 하고 있었다.
“아고오! 내 가방, 내 가방 아흐!”
김가다는 아까 앉았던 칸으로 죽을동살동 모르고 내달렸다. 천만다행으로 선반 위에서 그대로 잠들고 있는 가방을 가슴에 와락 끌어안으며 김가다는 몇 번이고 하나님을 연발하며 감사했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 때까지도 두 남자는 여전히 말다툼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아침부터 꼭지가 확 돌아서 횡설수설 허구 자빠졌어. 그러구두 처자식 밥 맥여 살리냐?”
“대가리에 털두 읍는 꼴뚜기 꼴 주제에 잘난체 마 임마, 무식해두 남의 논문 갖고 장난놀진 않는다 임마.”
몇 년전 어느 날 처럼 가방을 잃어버렸던 조금 전의 그 순간은 여태껏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삶 중에서도 김가다가 가장 체험하기 싫은 두 번째의 악몽이었다.
“이 나이에 마누라한테 내 쫓겨봐. 영락없이 노숙자 신세 되는 거니까 뭐...”<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