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눈치보며 전기도 물도 안써
마음마저 가난하긴 싫은 황해명(74) 할머니.
“이대로도 감지덕지지. 근데 자꾸 나 같은 노인네들이 늘어가면 나라 살림살이는 어떻게 할지…”
선천성 소아마비로 오른쪽 다리가 불편한 황 할머니. 장애로 아이를 못 가져 30대부터 지금까지 혼자다. 게다가 지난해부터는 오른쪽 눈의 핏줄이 터져 실명 위기에 놓여 있다. 왼쪽 눈은 이미 앞을 못 본지 오래다. 치료를 받고 있지만 나아진다는 보장 없이 더 악화되지 않기 위한 치료다.
그래서 할머니 방문은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형광등도 손님이 올 때 빼고는 켜지 않는다. 강한 빛은 할머니에게 위험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삶. 그러나 할머니는 신세 한탄 한마디 없다. 어두운 방이지만 먼지하나 없이 깔끔하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하는 가정도우미 봉사자들조차 놀랄 정도다.
“우리한테 좀 제발 기대~고기 좀 먹고 불도 좀 떼고…”
“35㎏이 뭐예요! 더 잘 먹고 방도 뜨시게 하구 그래야 하는데, 차라리 연탄보일러라면 연탄 지원이라도 받을텐데, 다들 그렇죠. 황 할머니 같은 분들이 제 집 있는 분이 있겠어요? 어떤 주인이 연탄보일러로 바꾸려 하겠어요.”
잔소리꾼 가정도우미 봉사자들은 자꾸만 말라가는 할머니를 보며, 눈치도 주지 않는데 집 주인 눈치 보며 전기며 수돗물이며 맘껏 못 쓰는 할머니에게 언제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자존심이 유난히 강한 황 할머니는 마실 가기를 싫어한다. 며느리며 딸이며 손주며 놀러간 얘기며….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소외감과 거리감을 모를 터.
때문에 일요일 성당 가는 일 빼놓고는 외출이 없는 활머니에게 이들의 애정 어린 잔소리만큼은 늘 정겹고 반갑다. 자존심으로 굳게 잠겨진 황 할머니의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향해 열리고 있는 이유, 바로 작지만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