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받는 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 백지사령장(白紙辭令狀), 즉 공명첩(空名帖)은 매관매직과 신분상승에 활용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 지금은 각종 선거가 끝난 뒤 당선자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대가로 보다 나은 보직으로 옮겨주거나,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 관직에 임용하거나, 공채를 가장한 특채 등의 신종 매관매직과 보은인사가 판친다.
예를 들어 시장이 취임한 후 자신을 추종한 세력을 임용하거나 자리를 만들어 주는 행위 등은 그들에게 ‘의리의 사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시민들에게는 절망과 실망을 안겨줄 뿐이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 보다 나은 자리로 승진하는 것과 객관적 기준에 따라 자리에 임용되는 것이 말하자면 ‘공정한 사회’인데,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시민과 지역을 위해서는 분골쇄신 하지 않던 사람이 선거 때만 되면 당선가능성 높은 정당과 후보자에게 부역하는데, 그런 이유로 관직을 만들어 임용하거나 영전시킨다면 이는 재물 대신 역무를 제공 받은 것과 같아 매관매직이라고 볼 수 있다.
후보자는 자신의 선거운동원들에게는 반드시 일당을 지급하고 선거비용으로 처리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그러나 길게는 1년 이상, 짧게는 3개월 이상 소요되는 선거기간 동안 단 한푼도 돈을 주거나 받지 않고 선거에 뛰어들고(그럴리야 없겠지만), 당선 뒤 관직을 만들어 임용하는 것이야말로 신종 매관매직이자 보은인사다.
게다가 공개채용 절차를 밟으며 교묘한 방법으로 특정인을 결과적으로 낙하산 임명하는 것도 매관매직 또는 보은인사일 뿐이다. 공기업 자리 등을 전리품 쯤으로 여기는 행태는 물론 의회 승인을 거쳐 조례를 개정하고 시행규칙을 뜯어고친 뒤 해야 할 대규모 인사발령도 시장 맘대로다. 조직개편도 보은인사 방향으로 간다. 그런데 불법을 감시해야 할 선관위나 집행부를 견제해야 할 의회는 이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신종 매관매직과 보은인사는 공정한 사회를 좀먹는, 브레이크 없는 역주행이다. 역주행의 끝은 탐관오리(貪官汚吏)라는 낙인인 것을 왜 모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