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다른 사람들이 흔하게 겪는 일쯤이야 김가다에게도 똑같이 불어닥친다 한들 뭐 그리 대수인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당하고 살지 않는 독특한 사건이 유독 김가다에게만 이빨을 하얗게 까뒤집고 대드는 통에 털썩 퍼질러 앉아 깡소주를 나발 불면서 애꿎은 담배만 연거푸 피어대며 타는 가슴을 달랬던 씁쓰레한 추억이 많았다.
김가다의 마누라는 굴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김가다는 백가지 음식중에서도 유독 굴을 싫어했다. 그것은 아마도 20년전, 황당하기 짝이 없었던 날의 추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날은 수년만에 찾아온 융동에다 모처럼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크리스마스를 사나흘 앞둔 날이었다.
고교동창생 모임이 있다해서 갓 낳은 진돗개 강아지들을 따뜻하게 살펴놓고 나들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의정부에서 종로5가행 버스를 갈아탔을 때였다. 누군가 김가다의 팔을 슬며시 잡아당기고 있었다. 깜짝놀라 돌아보니 중학교 때부터 김가다에게 영어를 배우러 다녔던 여제자였다. 그녀는 유난히 얼굴이 희고 눈매가 시원했던 여학생이었다. 공부를 썩 잘해서 의정부여고에서도 수석을 다투는 학생이었다. 훗날 그녀는 삼성그룹에 입사했는데 지금은 중견간부로 뉴욕의 지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소문만 입소문으로 듣고 있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개천에서 용났다고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이에요. 중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처음 뵙는데요?”
“허엉! 은영이 아냐? 대학입시 공부하느라 힘들지?”
“호호호, 선생님에게 영어 잘 배운 탓에 덕 많이 보는걸요.”
두 사람은 모처럼 만난 즐거움으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런저런 지난날의 일들을 떠올리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바로 그때였다. 버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앞에서 갈짓자로 달려오는 트럭을 피하려다 그렇데 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대며 몸을 가누지 못하고 버스바닥에 나동그라지고 있었다. 그 때 김가다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때리는 나무 항아리가 탁 터지더니 그 속에서 쏟아진 굴이 김가다의 얼굴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고 말았다. 그 모습이 너무 참렬했다. 김가다가 아수라장 속에서 비명을 내어질렀다.
“우왓! 이 이게 뭐야, 이게 대체 뭐냐곳!”
간신히 몸을 추스린 은영이가 난감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서, 선생님, 굴이에요. 굴상자가 선생님 머리를 맞히구 쏟아진 거에요. 어, 어쩜 좋아!”
“아고오! 환장하겠다아. 이꼴을 허구 어떻게 동창회엘 가냐 이거.”
사실 동창회도 동창회지만 벌건 대낮에 여제자 앞에서 굴범벅을 하고 서 있자니 굴 항아리가 아니라 차라리 화롯불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고 온 몸이 수백개 바늘에 찔린 듯 사람들의 시선이 여간 따가운 것이 아니었다.
“은영아, 나 여기서 내려야겠어. 어서가봐. 아고, 미치겠다 진짜아!”
“선생님 어쩌죠? 그 모습으로 어떻게요? 비참할 정도에요 증말.”
김가다는 근처에 있는 추병원 화장실로 황급히 뛰어들어갔다. 여자들이 기겁을 하며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전병코에다 살집이 뒤룩뒤룩한 청소부 아줌마가 놀라서 달려왔다.
“아저씻! 뭐하는 거에욧! 여자화장실엔 왜 들어와서 어물쩡 거려욧! 어마낫! 저 얼굴 좀 봐.”
“아줌마 미 미안합니다. 팔자에 없는 굴벼락을 맞은 바람에 아흐.”
“아, 남자화장실로 가요 빨리! 목욕을 해야지 얼굴만 씻어서 되겠수?”
“어, 어딥니까 남자화장실이? 우선 머리부터 감아야겠는데 어떻게 좀.”
아줌마가 김가다의 꼴이 너무 보기 민망했던지 김가다를 수돗가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김가다의 목덜미랑 머리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굴을 바가지에 물을 받아 수럭수럭 말끔하게 씻어주었지만 김가다는 머리통이 금새 얼음덩어리처럼 꽉꽉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아고! 하나님. 저는 허구한 날 왜 이모양입네까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