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연산군이 스스로 만든 처용놀이를 펼치며 온갖 음란한 짓을 즐기자 충신 김처선이 죽음을 각오하고 직언했다고 한다.
"전하, 처용무를 중지하시옵소서. 늙은 이 놈은 세조대왕으로부터 무려 네분의 임금을 섬겨왔사옵니다. 또한 경서와 사서를 읽어 대강 통하오니 일찍이 전하와 같은 놀이를 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사옵니다.” "뭐라, 고금에 나 같은 자가 없었다?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게로구나. 죽는 게 소원이라면 원대로 해주마." 화가 난 연산군은 활을 당겨 김처선의 목숨을 끊었다.
반면 연산군을 폭군으로 인도한 대표적인 간신인 김자원은 남의 눈치를 잘 살피고 말주변이 뛰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바꾸는 데 능했다. 그러다가 반정으로 연산군의 시대가 끝났다고 생각되자 연산군을 속이고 바깥 동정을 살핀다는 핑계로 달아났다. 연산군 시대는 1천만명 관람수를 돌파한 영화 <왕의 남자>의 배경이다. 역사가 구빗길을 돌 때마다 충신과 간신의 얼굴이 수면 위로 등장한다.
춘추전국 시대, 중국 초나라 장왕은 왕위에 오른 뒤로 3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주색에 빠져 살았다. 오거(伍擧)와 소종(蘇從)이 죽기를 각오하고 직언하면서 나라를 강하게 일으킨 일화가 바로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이다. 충신과 간신을 가리기 위한 어린 왕의 지혜였다.
임충빈 양주시장이 감사원의 종합감사결과 발표에 따른 후속대책으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양주시로서는 단체장이 검찰에 수사요청을 당하는 사상 초유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임시장 또는 그의 부인에 잘 보여 노른자위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몇몇 측근들은 희희낙낙이다. 임시장은 임기 4년이 짧다고 생각하는 탓일까.
이쯤에서 임시장은 삼국지(三國志) 촉지제갈량전(蜀志諸葛亮傳)에 나오는 삼고지례(三顧之禮)를 곱씹어봐야 할 듯 하다. 유비가 제갈 량을 얻기 위해 그의 누추한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찾아간 것은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한 인내심이었다. 덕장은 적의 충신을 자신의 충신으로 끌어안는다. 인재를 알아 볼 줄 아는 안목이 없다면 임시장은 불행하다. 인의 장막에 가려 더 이상 헛발질을 하지 말고 제갈 량이 자신의 명령과 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패한 부장 마속을, 전날의 공과 두터운 친분에도 불구하고 울며 목을 베어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을 각인해야 할 때다. 양주시는 양주시 공무원들을 위한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